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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치는 내 질문이 결정한다.

크게 크게 넓게 넓게 시선을 제발 높이자.

by 따뜻한 불꽃 소예

작은 회사에도 정치적 갈등은 존재한다. 나를 괴롭히던 파콰드는 떠났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여전히 좁은 시야에 갇혀 허우적거린다. 불교의 법화경에서 말하는 삼계—욕망에 집착하는 욕계, 물질에 얽매이는 색계, 허상에 빠지는 무색계—는 이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불타는 세계다. 이 삼계는 개인과 조직을 넘어, 인간이 집착과 편견에 사로잡히는 보편적 굴레를 상징한다.


며칠 전, 누군가 내가 출근 시간을 어겼다며 인사팀에 신고했다. 그날 나는 미국 상사와의 화상 회의를 마치고 출근한 것뿐이었다. 터무니없는 신고에 웃음만 나왔다. 파콰드 시절, 그는 불편한 직원들을 제거하려 사소한 문제를 부풀려 신고하곤 했다. 심지어 “책상이 어지럽다”는 이유로 사진을 찍어 신고당한 이도 있었다. 이들은 사소한 문제로 타인을 공격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본사 임원은 이를 “할 일이 없으니 저러는 거지”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욕계의 권력욕, 색계의 물질적 집착, 무색계의 왜곡된 신념에 갇혀 삼계의 불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파콰드는 좁은 시야 속에서 사소한 문제를 과장해 나를 통제하려 했다. 내가 실수하면 이를 부풀려 인사팀에 보고하거나 동료들에게 과장해 퍼뜨렸다. 그의 행동은 욕계의 권력욕과 무색계의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집착은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좁은 시야에 갇힌 집단은 편협함 속에서 점점 더 무모해진다. 이는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처럼, 집단적 맹목성이 낳은 극단적 결과를 떠올리게 한다. 좁은 시야는 개인과 사회를 모두 파괴하는 불길이다.


내 가치는 내가 던지는 질문이 결정한다. “뭣이 중헌디?”라는 물음은 내 철학을 반영한다. 사소한 문제에 집착할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이는 삼계의 불길에 갇히는 길이다. 반대로, 시선을 높이고 넓히면 불길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업(業)이 무의식에 새겨져 삶을 결정한다고 본다. 조용헌 작가는 이를 ‘업경(業鏡)’이라 해석했다. 죽을 때, 무의식 속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사소한 집착에 매이면 그 업은 좁은 시야를 강화할 뿐이다.


삼계의 불길은 회사라는 작은 조직을 넘어, 인간의 보편적 약점을 드러낸다. 욕망, 물질, 허상에 집착하는 마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시야를 넓히고 높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선택이 내 업을 결정하고, 내 질문이 내 가치를 만든다. 크게 크게, 넓게 넓게, 시선을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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