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 갔다. 그리고 그건 좋은 삶이었다. 내 삶에 무엇이 비어있는지 알지만, 나는 이미 있는 것에 감사해 했다.
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에 열댓 번은 뚜껑이 열린다.
어제 아이의 방과 후 선생님께서 아이가 수업시간에 너무 떠든다며 전화를 주셨다. 그리고, 다른 방과 후 선생님은 아이가 책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문자를 주셨다. 그리고 내일은 아이의 일기장 숙제 검사가 있는 날이다.
저녁을 먹고 일기장을 쓰는데, 아이는 함흥차사다. 내가 이야깃거리를 주고, 첫 몇 줄을 불러줘도 그다음부터 모르겠다고 내가 설거지를 마치고 자기 방으로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느그적거린다. 거의 2시간 동안 두줄을 쓴 아이를 보고 뚜껑이 열렸다. 그리고 방과후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잃어버린 책을 찾다가, 아이는 그 책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나에게 짜증을 냈다. 순간, 분노의 화산폭발이 일어났다. 뚜껑이 열린 나는 아이에게 미친 듯이 비난을 하듯 '넌 수업시간에 떠들고, 책도 잃어버리고, 일기도 혼자 못써'라며 내 화를 쏟아냈다.
드센 내 아들은 엄마가 그런 식으로 말해서 기분 나쁘다고 고레 고함을 치고, 남편은 그 소리에 또 아이를 잡는다. 아 이 환상의 사이클...
휴우, 카오스적 상황이다.
너무 화가 미친 듯이 나고 이런 내 현실이 너무 싫어지는 저녁이다. 밍기적거리는 아이를 쳐다보고 또 나는 비난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낮에 책에서 본 그 구절이 생각났다.
Each Day, I was building a life of my choosing, and it was a good life. I know what was missing but I was also appreciative of what was there.
어떻게 하면 주어진 이 삶에 짜증을 내지 않고 감사해 할 수 있을까?
매일 다짐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비난을 했고, 짜증을 냈다. 그 짜증과 비난은 사실 아이의 몫이 아니라, 내가 내 삶에서 오는 짜증과 분노라는 걸 알고 있고 그 무게는 내 몫이지만, 성숙하지 못한 나는 아이에게 쏟아낸 듯하다.
양치를 안 하겠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또 벌였다.
결국엔, 아들아 엄마는 네가 이럴 때마다 너무 속상해, 내가 어떻게 해야 엄마가 말하는 걸 들을 수 있겠니?라고 하니깐 그제야 '알았어요'하며 이를 닦는다. 이를 닦고 침대로 돌아온 아이는 내 이불속으로 들어가 내 옆에 딱 붙어가지고 안아달라고 한다. 근데 그게 참 밉지 않았다. 더 미안함이 올라왔다. 미안해, 너한테 그렇게 혼낼 거가 아닌데, 엄마가 너무 화내서 미안해~. 너 정도면 정말 너무 잘하고 있는데 말이야.
매일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싶다. 나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듯, 종이에 적기도 하지만 그게 참 잘 안된다. Fake it until make it이라는 말처럼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삶의 무게로 인해, 그리고 그 무게를 감당해 내지 못하는 내 미성숙함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싶은데 말이다.
대신, 언제라도 웃으며 삶을 긍정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해하는 엄마이고 싶다.
아~~~ 아직 가스라이팅이 덜 된 듯하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