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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Jun 25. 2024

불안과 신점

불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러다 보면, 지나가게 된다.

숲은 내게 말했다. 모든 존재를 그 자체로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이라고.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발췌



사람이 불안해지면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요즘 점성, 사주, 신점 이런 사업들이 성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한편으로 미래를 알고 싶어, 전화로 신점을 봤다. 점을 봐준 점사는 나에게 남편을 위해 '명을 길게 해 주는 굿'을 해주라고 했다. 처음에는 혹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내 남편의 명을 길게 하는 대신, 다른 어떤 이의 명을 줄여야 하는 굿이기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 사람이 약해지는구나

오래전에 외국계 기업에서 임원직까지 하셨던 똑똑하신 분께서 퇴직 후 암에 걸린 상황에 어떤 종교에 빠져 퇴직금까지 날린 뉴스기사가 생각이 났다. 그분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서 그렇게까지 하셨을까?


나도 새삼스레 이런 굿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참 허탈해진 기분이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내 삶이 뿌리째 뽑히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 어떤 노력으로도 나는 내게 찾아오는 이 불행을 막을 순 없다. 아무리 노력하여 신에게 빌어도 폭풍은 숲의 거의 모든 것들을 쓰러트린 듯 지나간다. 그 진리를 알면서도 어리석은 나는 이렇게 또 삿된 무엇인가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처방책을 찾고 있었다.


아들과 주말에 넷플렉스 '지옥'을 보면서도 말했다. '사람이 지옥에 가고 저런 불행을 당하는 건, 그 사람이 잘하고 못하고, 착하고, 악해서가 아니야. 그냥 폭풍처럼 오는 거야.'라고 아들에게 말해줬다. 그랬더니, 아들이 말했다. '참 신은 나쁘다.'


그러게 참 신은 나쁘다.


더 이상 대꾸해 줄 순 없었다.

남편이 아픈 것도,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이 불행이 반드시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린 그냥 담담히 이 순간들을 받아들이고 강물이 흘러가듯 지나가야 한다. 항상 최선을 희망하지만, 인간인 내가 감히 그 미래를 예측할 순 없는 것이기에 그냥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어쩌면 그러다 보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읽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말이다. 


어쩌면 수없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두려움에 웅크리더라도 결국엔 나와 우리 가족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아~이렇게 대답해 줬어야 하는데... 아쉽다.

불운을 피하는 비방책이란 없다. 단지, 그 자체로 수용하고 흘려보내는 길 이외에는 다른 우회길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런 시간들이, 아픔들이 겹겹이 쌓여 좀 더 멋진 내 인생을 만들어 줄 것이라 그리 믿어야겠다.


그리고 지나고 나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더 편안해질지도 모르겠다.


In the endless stumble toward ourselves, we harvest the crop we are given.



내 과수원이 그랬듯 나 역시 새로운 토양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뿌리째 뽑히고도 어떻게든 살아왔다. 그러나 셀 수 없을 만큼 흔들리고, 넘어지고, 무너지고, 두려움에 웅크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나는 강인함은 이 어수선한 숲 바닥과 같다는 걸 배웠다. 강인함은 작은 승리와 무한한 실수로 만들어진 숲과 같고, 모든 걸 쓰러뜨린 폭풍이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쬐는 숲과 같다. 우리는 넘어지고, 밀려나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최선을 희망하며 예측할 수 없는 조각들을 모아가며 성장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 모두는 함께였다.


From 흐르는 강물처럼 by 셸리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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