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러다 보면, 지나가게 된다.
숲은 내게 말했다. 모든 존재를 그 자체로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건, 바로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이라고.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발췌
사람이 불안해지면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점성, 사주, 신점 같은 서비스가 유행처럼 번져간다. 나도 다르지 않다. 마음 한편으론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또 한편으론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결국, 전화로 신점을 봤다.
점사는 내게 말했다. "남편을 위해 명을 길게 해주는 굿을 해야 합니다." 순간 흔들렸다. 절박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이 들었다. 누군가의 명을 늘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명을 줄여야 하는 굿이라니. 그건 내가 믿고 싶은 길이 아니었다.
아 이렇게 사람이 약해지는구나
오래전에 외국계 기업에서 임원직까지 하셨던 똑똑하신 분이 퇴직 후 암 진단을 받고, 절박한 심정에 종교에 빠져 퇴직금까지 날렸다는 기사를 떠올렸다. 그분도, 얼마나 간절하고 두려웠을까?
허탈했다. 나 역시 지금 그런 이야기까지 듣게 될 줄이야.
불행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예고 없이, 뿌리째 삶을 흔들며 찾아온다. 그 어떤 노력으로도, 그 어떤 기도로도 나는 이 불행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안다. 폭풍은 거의 모든 것들을 쓰러뜨리고 지나간다. 그 진실을 알면서도, 나는 또다시 불안을 달래기 위한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어리석게도 말이다.
주말에 아들과 넷플렉스에서 '지옥'을 봤다. 아들에게 말했다. '사람이 지옥에 가고 저런 불행을 겪는 건, 착해서도 아니고 나빠서도 아니야. 그냥 폭풍처럼 오는 거야."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그럼 신은 참 나쁘다.'
그러게 참 신은 나쁘다.
더 이상 대꾸해 줄 순 없었다.
맞다. 정말 그런 날이 있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 앞에서 흔들리기도 하고, 우리가 맞닥뜨린 이 일련의 불행도, 뭘 잘못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는 담담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을 떠내려가며 살아갈 뿐이다. 항상 최선을 희망하지만, 인간인 내가 감히 그 미래를 예측할 순 없다. 저항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읽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어쩌면 수없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두려움에 웅크리더라도 결국엔 나와 우리 가족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아, 그때 그렇게 대답해 줬어야 했다. 신이 나쁘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불운을 피하는 비방책 같은 건 없다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수 밖엔 없다고. 이 시간들이, 이 아픔들이 겹겹이 쌓여 결국 더 단단하고 깊은 나를 만들 거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지금보다는 더 편안해질지도 모른다고.
In the endless stumble toward ourselves, we harvest the crop we are given.
- Shelley Read, 흐르는 강물처럼
내 과수원이 그랬듯 나 역시 새로운 토양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뿌리째 뽑히고도 어떻게든 살아왔다. 그러나 셀 수 없을 만큼 흔들리고, 넘어지고, 무너지고, 두려움에 웅크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나는 강인함은 이 어수선한 숲 바닥과 같다는 걸 배웠다. 강인함은 작은 승리와 무한한 실수로 만들어진 숲과 같고, 모든 걸 쓰러뜨린 폭풍이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쬐는 숲과 같다. 우리는 넘어지고, 밀려나고,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최선을 희망하며 예측할 수 없는 조각들을 모아가며 성장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 모두는 함께였다.
From 흐르는 강물처럼 by 셸리 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