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용과 통제적 그림자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국은 아이 키우기 참 힘든 나라다. 사교육비와 집값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 모두를 조이는 사회적 기준이 너무나도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한다는 '룰'이 너무 많고, 그 룰에서 단 한발짝만 벗어나도 비난과 조롱이 날아온다.
혐오 - 맘충, 노인충, 아줌마충
이런 혐오표현은 너무 쉽게 소비되고, "이래서 부모들이 문제야."라는 이런 차가운 일반화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도배한다.
최근 예술의 전당의 한 공연장에서 있었던 일도 비슷하다. 비싼 클래식 공연장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있었다. 1부가 끝나자, 근처에 앉은 한 남성이 그 아이에게 직접 조용히 하라고 경고했다. 결국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을 떠났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 커뮤니티는 시끄러워졌다.
- 비싼 클래식 공연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건 부모의 욕심이다.
- 아이도 잠시 소란스러울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가.
나는 이 사건에서 조금 다른 장면이 걸렸다.
왜 그 남자는 아이의 부모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부모가 아닌 아이에게 직접 경고했을까?
이건 어른이 자신의 불편을 직접 감정적으로 투사한 폭력적 행위일 수도 있다. 아이에게 어른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 기준에 미달하면 융합할 자격이 없다고 몰아세우는 것. 그 아이에겐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이 사회는 점점 아이들을 통제하고, 부모를 재단한다.
아이들은 조금도 소란스러워선 안 되고, 부모는 언제나 완벽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미숙하거나 준비되지 못하면 비난받는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이런 경험들을 겪어왔다.
- KTX에서 칭얼대던 아이에게 단체로 "아이씨"라고 짜증냈던 청년들.
- 아이가 어리면 집에만 있어야지 왜 사람 많은 곳에 나오냐는 댓글
- 부모의 존재 자체를 공격하는 혐오 담론들. 노키즈존
내 어린 시절에는 관용이 있었다.
실수를 허용했고, 다름을 견뎠다. 무엇보다도 '다시' 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내 아이들의 세상은 점점 더 혐오와 조롱의 사회로 바뀌어간다. 나는 이 저출산이 단순히 경제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적 숨막힘**이야말로 근본 원인 중 하나다.
한국 사회의 집단 그림자는 통제와 불안이다.
'불안'이 클수록 안전과 질서를 추구한다. '안전'을 추구하다 보면, 나와 타인을 더 많이 통제하려 든다.
모두들 '안전과 질서'를 말하지만, 결국은 숨막히는 통제사회가 된다.
우리는 인간이다. 실수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존재다. 서로에게 숨을 쉴 공간을 내주어야 한다.
통제에 기대어 불안을 덜려는 집단은 결국 그 불안을 서로 전가하면서 아이들이 자랄 공간마저 빼앗는다. 이 현실은 점점 더 숨막혀 온다.
"인간이 하루아침에 지혜로워질 수는 없다. 사람은 오랜 세월 헤매야 하며,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고, 때로는 어리석음에 정열을 불태우다가 끝내는 자신에게 필요한 최고의 선택을 내리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소노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나는 이 글귀를 읽으며 소망한다. 부디 우리 모두에게 실패하고, 헤맬 수 있는 사치, 실수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숨 쉴 틈 하나쯤은 남겨주는 사회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