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빈 공간에서부터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주말 오후, 아들이 보던 TV리모컨을 쥐게 되었다. 우연히 틀어본 넷플릭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다'는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1990년대 후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살인마들과 그들의 심리를 파헤친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들. 그 태동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드라마 속 사이코패스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 심각한 결핍 속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부재, 끝없이 이어지는 사회적 냉대와 소외. 그들은 불안정한 토양 위에서 자랐고, 결정적인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이 되었다.
나는 그 순간 '결핍'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결핍은 단순히 무엇이 부족하다는 상태를 넘어, 사람을 더 쉽게 무너뜨리는 약한 고리가 된다. 어린 시절의 무력감은 종종 다른 형태의 폭력이나 공감 능력 부족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모든 결핍이 파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여전히 '자유 의지'라는 선택지가 남아 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결핍 생각해 왔다. 아픈 남편을 볼 때나, 어린 시절부터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는 내가 '나는 충분한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나는 충분한가'라는 질문 앞에,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틈을 안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그 틈을 모른 척하거나 부정하고, 어떤 이는 소비나 성취로 메우려 애쓴다. 나는 오히려 그 구멍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이유를 찾고 또 찾았다.
아직 결론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낀다. 평생 그 구멍만 들여다보고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에 매달린다면, 인생이라는 넓은 여행길에 발을 떼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구멍을 덮어버리는 것도, 모른 척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그 구멍보다 훨씬 크고 단단한 경험들로 나를 다시 빚어내는 일이다. 상처를 직면하되,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재발견하는 것.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깨닫는다. 내가 이미 온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 거대하게만 보였던 결핍은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을 성인이 되어 다시 바라봤을 때처럼 작고 사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결핍은 마치 알 속에 갇힌 번데기처럼 나를 옭아매는 듯했지만, 그 안에서 날개를 키울 가능성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에서 깨어나 번데기 시절을 지나, 화려한 날개를 단 나비로 날아오를 것이다.
상처는 여전히 내 일부지만, 이제 그것은 나를 짓누르는 돌이 아니라 날아오르게 하는 날개뼈가 될 것이다. 그 날개를 펼치며,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자유로운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