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탄 기차가 결국엔 올바른 역으로 데려다준다.
Sometimes the wrong train takes you the right station.
오늘은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다. 빗방울이 거세지 않았기에 예정대로 산책을 나섰다. 9월이지만, 여전히 기온은 30도를 훌쩍 넘고,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빗방울에 젖은 풀냄새와 낙엽 냄새가 섞여 계절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칡꽃 향기까지 어우러져, 산책길은 마치 조향사의 작은 공방처럼 촉촉하고 생명력 가득한 향기로 가득 찼다.
저 멀리 강가에서는 황새와 백로가 유유히 걸으며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는 곧 큰비를 쏟아낼 듯 천둥과 벼락이 이어졌다.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자연의 모습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내 눈엔 그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다.
얼마 전 인도 영화 런치 박스를 보았다. 이 영화는 잘못 배달된 도시락을 통해 주인공들의 삶이 변화되는 과정을 담았는데,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Sometimes the wrong train takes you the right station."
잘못 탄 기차가 결국엔 올바른 역으로 데려다준다는 뜻이다.
삶을 얼마나 정확히 꿰뚫는 말인가.
우리는 왜 삶을 선형적 과정이라 믿을까?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졸업하면 대기업에 취직하고, 집을 사고, 가정을 이루면 행복이 온다고 믿는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계획에 없던 도시락 배달 사고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의 여정을 겪게 된다. 그것은 실패도, 불행도 아니었다. 그저 삶이 새로운 국면으로 흘러간 것뿐이었다.
지금 내 삶은 어떠한가?
지금 직장은 내 계획에 없던 곳이고, 남편의 암과 아버지의 암 역시 내 인생 설계도에는 없던 사건들이다. 삶은 계획하지 않은 일들을 쉴 새 없이 내 앞에 가져다 놓는다. 그렇다고 내 삶이 실패이고 불행인가? 아니다. 그저 '잘못되었다'라고 규정하는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뿐,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나는 요즘 점심시간 산책을 하면서 삶의 감각을 되찾는다.
비 냄새, 칡꽃 향기, 낙엽 냄새...
있는 그대로 느끼고 살아내는 그 순간이 곧 행복이다.
행복은 미래의 보상이 아니다. 어떤 과제를 끝내야만 얻는 결과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데 있다. 남편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 가족이 함께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삶은 충만하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이것이 끝나면, 그가 회복되면, 그다음에는..."하고 미래를 계획하려 든다.
하지만 인생이 과연 내 생각대로 되던가.
4년 안에 회복하고, 그다음엔 행복해지고...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오늘의 산책에서 나는 깨달았다.
인생은 선형적 과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서사다. 이미 매 순간이 내 삶이고, 그 자체로 소중하다.
백로가 천둥과 번개 속에서도 그저 물고기를 잡아먹고, 이내 훌쩍 날아가듯이.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나는 그 안에서 살아간다.
잘못된 기차는 없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곧 내 역이고, 내 삶이다. 앞으로도 나는 매일의 산책처럼,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