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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불꽃 소예
Jul 26. 2022
천지팔양신주경을 독송하다가 이런 구절이 나왔다. '마음에는 허망함이 없고 몸은 바르고 참된 것을 행해야 하느니라' 이 허망함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또 생각거리를 주었다. 우리는 어떨 때 허망함을 느낄까? 참 인생이 덧없네, 공허하네 이런 감정은 어떨 때 느낄까? 달리기를 무진장 열심히 했다가 결승점에 도달하면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그 마음이 생기는 것인지... 아마 사람마다 그 공허함을 느끼는 순간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판단할 때 공허함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아마도 목표지향적이며 경쟁적인 삶을 살아 왔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욕망하는 어떤 아파트를 샀다거나 혹은 어떤 직책에 오른다거나 어느 정도의 사회적 성공을 누렸다고 생각하고 나서는 더 이상 나를 아침에 자동으로 눈뜨게 하는 무엇인가가 사라지고 나면 자연히 삶에서 공허함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흔히 산을 등반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산은 정복할 정상이 있어 우리에게 성취감과 희열을 준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고 나면 우리 모두는 하산해야 한다 걸 알고 있다.. 물론 또 다른 정상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려와야 한다. 만약 삶에서 계속 방황하고 있는 거 같이 느낀다면, 산을 등반하는 것과 같은 마인셋으로 인생을 살아가서는 안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스티브 도나휴가 말한 대로, 그 시점에는 사막을 건너는 마인셋으로 전환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욕망은 삶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기폭제이다. 이런 욕망이 있을 때 도파민과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칙칙폭폭 열차가 움직이는 것과 같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지나치다보면 브레이크 없는 기차를 우리가 흔히 폭주한다고 하듯, 만약 어떤 욕망을 끊임없이 계속 채우려고 돌진만 하다 보면 분명 파국을 맞게 된다. 강제로 브레이크가 작동하여 기존 노선을 수정할 수도 있지만, 만약 이런 강제 브레이크가 없던 사람들은 아마도 계속해서 자신의 현재 욕망을 대체할 또 다른 욕망을 계속해서 추구하다가 뒤늦게 파국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내 욕망 추구 대상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아마도 선순환이 일어나 파국을 맞는 일은 없겠지만, 그 욕망이 지극히 자기만을 위한 것이고 혹은 그 대상이 잘못되었을 때는 인생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시작점인 것이다.
만약 삶에서 이 공허함을 느끼는 순간을 만난다면, 탐진치.. 어쩌면 그동안 내가 너무 욕망하고, 탐내는 마음이 지나치진 않았는지 그리고 이제는 내려놓고 내 삶의 여정을 점검해 보는 신호라고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한다. 그 공허함을 만난다는 것은 아마도 스티브 도나휴가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이라는 책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쉬면서 기력을 회복하고 자신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정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반드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폭주하는 기차처럼 지나친 욕망과 그동안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그 아집으로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고통의 바다에 빠뜨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교 경전에서도 마음에 허망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공허함, 허망함을 만난다면 잠시 쉬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내 지나침을 덜어내어 그 공허함을 없애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라 나는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