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ieving in the perhaps_어쩌면 좋을 일이 일어날지도
연휴의 시작, 아는 동생과 부산 비엔날레를 다녀왔다.
누군가는 지금 이 상황에 내가 편안하게 미술관이나 다니는 게 말이 되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마치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쨍쨍한 날, 먼 길을 달려 전시장에 도착했다.
비엔날레인 만큼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았고, We, on the rising wave라는 주제로 세 개 관에서 다양한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강한 울림을 준 작품은 **문지영 작가의 '엄마의 신전'**이었다.
예술은 공감의 영역을 만든다지만, 이 작품은 내 안의 구체적인 감정을 건드렸다. 작가는 유년 시절 아픈 동생과 그 치유를 기원하며 종교에 의지했던 어머니를 회상한다. 휴일이면 절과 암자에 가던 그들의 일상. 불전에 기도드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곧 나였고, 불상 앞에 선 아이의 표정은 내 아이 같았다.
나 역시 요즘 기도를 많이 한다.
남편의 치병을 기도하고, 아이의 미래를 기도한다. 내가 기도할 때, 내 아이는 그 자리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어쩌면 문지영 작가의 어머니처럼, 나 역시 기댈 곳 없는 이 세계에서 기도밖에 할 수 없기에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여기서 브레이크를 걸기로 했다.
아무리 다크한 현실 속에서도, 어쩌면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 '어쩌면'이 사람을 살게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그런 어쩌면의 빛, 살아볼 만한 삶을 전하고 싶다.
좋은 기억을 심어주는 것,
즐거운 순간을 함께 겪는 것,
그런 것들이 아이에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자양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그날 화창한 날씨 속에 미술관을 다녀왔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살린다.
지랄 맞은 현실 한가운데서도
나는 이 하루의 여운만으로 한 달을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Believing in the perhaps.
그 한 줄의 희망을 품고, 나는 내 아이와 함께,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