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와서 아이의 축구교실에서 만난 엄마와 처음으로 연락을 하여 만나게 되었다. 그간 사는 게 바빠서 네트워킹에 대한 생각이 그다지 없었는데 아이가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내 탓인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어떤 사명감이 생겼다. 라테 이야기를 꺼내기도 뭐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우리 부모님은 이런 고민이 없었다. 그땐 동네 밖에 나가면 아이가 천지였고, 그냥 나가서' 나도 놀이 끼워줘' 이러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한다. 축구를 하려고 해도 학원에 가야 하고 엄마들이 나서서 어떤 모임을 만들어 아이 친구 그룹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한다. 그 아이들 생일 때 초대하고 초대받고 해서 놀고, 키카에도 같이 가고 말이다. 그러니 참 시대가 점점 더 아이 키우기 어려워진 거 같다.
하지만 시대를 탓하면 뭐하리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애들이 별로 없다. 시골엔 노인과 개만 많다. 그리고 근처 아팟단지에는 아이들이 좀 있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도 그 그룹에 끼워야 하는데라는 나의 욕심이 생겼다. 동네에서 만난 그 엄마는 자기는 일부러 놀이터에 나가서 아이에게 무리를 만들어주려고 한다고 한다. 시골학교는 인원수가 적어 반도 적다. 그래서 이 무리에 처음부터 끼지 못하면 6년의 생활이 힘들어진다고 한다. 참 잔인한 동물의 세계이다. 이 정글에 우리 아이는 얼마나 적응할 수 있을까?
차라리 우리 엄마 때처럼 들판에 소 풀어놓듯이 아이들을 풀어놓고 키우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 이런 마이크로 매니징까지 해야 하는 육아환경이 과연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엄마가 만들어준 친구, 학원, 각종 커리큘럼 등등... 어디까지 엄마가 개입해야 하는 것일까? 주말에 아이와 과학관에 갔다가 인공지능 자동차 체험 프로그램을 참여했다. 아이가 기기를 이리저리 조작하는데, 잘 못하는 거 같아서 내가 막 알려줬다. 그랬더니, 아이가 버럭 화를 내면 '내가 할 건데, 왜 엄마가 맘대로 해!'라고 소리쳤다. '네가 못하니까 엄마가 도와주는 거야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 좀 미안했다. 어쩌면 내게도 '여유와 틈'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맘껏 실패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 내 마음의 여유와 틈'말이다. 누구는 그것을 인내심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이래저래 육아는 힘들다. 개입과 허용 사이에서 나는 오늘 또 우왕좌왕하게 된다. 부디 그 밸런스를 잘 찾아서, 아이 스스로 삶을 도전적이고 신나게 살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이다. 내가 최대한 적게 개입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