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따뜻한 불꽃 소예 Oct 12. 2022
아이가 7세까지 자라는 동안 안정적이고 좋은 양육환경을 마련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모든 맞벌이가 그렇듯 우린 바빴고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그래서 그 좋은 캠핑과 나들이를 남들만큼 다니지 못한 거 같다. 이웃집 다른 엄마와 이야기하다가 부부가 자영업을 하고 있는 그 집 엄마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또 다른 엄마도 아이가 어렸을 때 부부싸움을 많이 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맨 처음에는 나만 최악의 부모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들 각자가 부족함을 느끼는 듯하다. 라테 이야기를 꺼내기도 민망하긴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래서 부모역할에 대한 이해도 인식도 없었기에 아이를 낳기만 하면 저절로 큰다고 생각하신 거 같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어느 정도 빈곤에 대한 고민이 해결이 된 세대이기에 삶의 질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각종 매체를 통해 양육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접하게 되다 보니 이 양육에 대해 필연적으로 어떤 죄의식과 부담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나오는 그 가족들의 나들이 사진에 울적한 기분을 느낀 사람들이 한 둘이겠나, 나도 그런 부모이고 싶으나 그게 쉽게 잘 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나 혼자서라도 아이에게 이 좋은 세상 더 좋은 체험을 해주어야지 하고 늦었지만, 그동안 못했던 거 다 해주리라 하고 이리저리 계획을 짰다. 하지만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거나 다른 일정으로 내가 짜 놓은 계획표가 틀어질 때마다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계획표를 펼쳐놓고 보니, 머가 이렇게 빡빡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 아이가 이런 체험과 경험을 다 원할까? 아니 필요로 할까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이 맞나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학군으로 유명한 동네의 엄마 말로는 초등학교 6학년이면 이미 중학교 과정을 모두 마쳐야 한다고 한다. 선행학습을 이미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 아이는 이미 텄다. 이제 한글을 꾸역꾸역 겨우 읽고 수학 개념을 익히기 시작했다. 덧셈을 가르치는데 어찌나 속이 타는지, 일찍부터 아이를 가르치지 못한 엄마는 또 미안하고 그래서 또 더 열을 올리다 속이 탄다. 내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되고,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는가 그리고 내가 과연 그런 삶을 살게 만들 수 있을까?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의사나 변호사 등 선망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된들 그것이 내 노력으로 된 것일까? 만약 그렇다라고 생각하면 나는 분명 그 대가를 보상을 아이에게 기대하게 될 것이고 그건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엄마의 속은 타지만 또 이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누군가 말하듯, 어쩌면 지 팔자대로 살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퍼붓고 노력해도 자식 문제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래 일단은, 난 여기서 잠시 계획표 수정하는 것을 멈추고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무엇을 더하고 뺄지 말이다. 이왕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으로 앞서 나가는 아이를 만드는 그 리그'에 나는 끼지 못하니, 그 리그엔 얼씬 거리지도 말아야겠다. 그러다 내 아이가 나중에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왜 그렇게 무책임했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 말씀처럼 부모는 원래 자식의 원망과 걱정거리를 안고 사는 존재이기에 겸허히 그 막중한 책임을 지기로 맘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