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산 같은 믿음의 눈동자

육아의 원칙

by 따뜻한 불꽃 소예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문득 불안해졌다. 그리고 남편의 권해 준 엄마표 영어라는 책을 읽다가 그 불안이 증폭되었다. 아이의 교육에 대해 내가 그동안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변명 같지만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남편과 사이도 좋지 못했고 일하느라 항상 피곤하고 바빴다. 그래서 아이를 잘 키워야 하지 마음만 먹었지 뭐 제대로 해놓은 게 하나도 없다. 아이가 7세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한글을 가르치고 영어도 끼작거리고 있다. 아 이러다 우리 아이가 영영 처지면 어떡하지? 내가 너무 무책임했다고 원망하면 어떡하지 하고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근처 대형 영어학원에서 하는 설명회도 따라다니고 이리저리 정보를 수집했다. 어느 학원이 좋고 이 시기에는 무엇을 해줘야 하니 하고 정신없이 이리저리 뒷꽁무니만 쫓아다녔다.


엄마의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영 관심이 없다. 뒤늦게 영어책을 읽어주고 뭐라도 시도하려 해도 아이는 관심이 없고 짜증만 낸다. 갑자기 왜 이래 이 엄마? 이런 태도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유치원에 너무 가기 싫다고 한다. 친구들이 안 놀아준다며 짜증을 냈다. 출근 전이라 짜증이 확 올라왔지만, 갑자기 아이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래 힘들지? 새로운 곳에 들어가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지? 그래, 원래 그래. 새로운 곳에 가면 아마 친구들이 자기들 무리에 안 넣어줄지도 몰라.. 넌 이방인이니깐 그리고 너도 그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놀이 규칙이라든지 그런 것도 알아내야 하고 피곤할 거야, 엄마도 그래. 엄마도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서 힘들고 그러네.. 그런데 너 정말 잘 해내고 있어. 네가 힘든 거 엄마도 알아 그리고 지금까지 잘해왔어~"라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어쩌면 내 아이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만년설산 같은 믿음의 눈동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유치원 선생님이 뭐라고 해도, 반 친구들이 뭐라고 해도. 집에서는 엄마가 든든하게 너를 지켜보고 있다고 니 뒷배가 되어주겠노라는 믿음 말이다. 그래서 아이를 너무 더 몰아붙이지 않기로 했다. 그놈의 파닉스고 영어고 한글이고 수학이건 간에 지금은 너와 나의 본딩(bonding), 결속이 제일 중요한 거다. 그래서, 이 녀석이 나에게 그런 만년설산 같은 한결같은 믿음, 그런 든든함을 느낄 때까지는 아이를 학원으로 몰아 넣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학원 뺑뺑이를 하다 자존감이라도 떨어지면, 그 어떤 사교육도 내 아이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없고 이 아이와 나 사이를 이어 줄 것이 더 생기지 않기에, 나의 불안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아마도 때가 되면 땅이 녹고 씨앗이 발아가 되어 꽃이 피듯, 아이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 후회와 죄책감 그리고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아이를 또 다른 절벽으로 몰아 넣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박노해 님의 그 한사람이라는 시에서 본 구절

나 여기에 있다. 너 어디에 있느냐
만년설산 같은 믿음의 눈동자로
지켜봐 주는 그 한 사람
내 인생의 그 한 사람


우리 아이에게 그게 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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