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백신, 1 코로나

[D-26.078] #코로나 #건강 #백신 #트루먼쇼

by 이재민
11월 23일, 점심에는 셔츠, 저녁에는 패딩 (10° - 12°)


나는 코로나 백신을 한 번도 맞지 않았다. 대신 마스크는 늘 KF94로 준비하며 철저하게 쓰고 다녔다. 마스크의 힘이었는지 코로나가 인류를 뒤덮은 이후로는 자그마한 감기조차 걸리지 않았었다. 물론 이 기록은 저번주 목요일에 깨졌지만.


0 백신, 1 코로나


지난 목요일 아침부터 기침이 잦아지더니 밤이 돼서는 체온이 37.5도까지 올라갔다. 그동안 나는 감기에 걸려도 열이 잘 안나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난 지금껏 감기에 안 걸려본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온몸이 뜨겁다 못해 뇌와 눈이 다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높은 열에 잠은 오지 않았고, 결국 눈을 뜬 채 아침을 맞이하게 됐다. 사실 이때까지도 내가 코로나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심한 독감 하나 걸렸구나 싶었다. 하지만 자가키트는 이걸 코로나라고 부르고 싶었나 보다.


살면서 처음 보는 두 줄이었다. 아빠가 자가키트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오랜만에 코를 쑤셔 테스트를 해보았더니 양성이 나왔다. 코로나는 다 거짓 질환인 줄 알았는데, 적어도 내 인생이 트루먼 쇼는 아니었나 보다.


병원까지 다녀온 뒤엔 '밥 먹고, 약 먹고, 자고'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코와 목은 붓지 않아서 먹는 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일요일이 돼서는 아니게 되었다.


나는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기침을 많이 해서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완전 아니었다. 그냥 목이 미친 듯이 붓고, 아파서 목 주변의 근육을 쓰지 못해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목이 얼마나 부었는지 침을 삼킬 때조차도 침이 넘어가지 않은 채 역류하는 듯했고, 목의 염증은 귀로까지 전이되기도 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지만 나의 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목이 부어 먹는 것까지 시원찮아지다 보니 몸무게 3kg가 금세 빠지기도 했다. 밤이 되면 몸이 더욱 아파왔기에 밤낮이 바뀐 지는 이미 오래됐고, 급기야 알 수 없는 우울감과 스트레스까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잘 캐치하는 편이라서 늦은 밤에 산책을 하며 적절하게 풀 수 있었다.


무디게 가는 시간도 시간이라고, 어느덧 몸이 아픈지 6일 차가 되었고 염증과 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예상치 못한 시련이 또 한 번 찾아오게 됐다.


말로만 들었던 후각 상실의 증상이 나에게서도 발견됐다. 레몬을 먹어보고, 식초를 끓여 향을 맡아보고, 향수를 코에 뿌려보기까지도 했는데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나름 음식과 술을 테이스팅 하며 소비자에게 추천하는 일을 하는 입장이라, 앞으로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스럽지만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치유가 된다 하니 일단은 지켜보려 한다.


한 번 걸려보니 '결코 가볍게 볼만한 질환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는 충분히 두려움을 안길 줄을 알고 고통을 줄 줄도 아는 녀석 같았다. 계속해서 코로나 앞에 쩔쩔매며 살아갈 순 없겠지만 지속적인 경각심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쪼록 더 이상 고통받는 일 없이 세상이 조금 더 건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와 일주일을 함께한 약들로 마무리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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