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맥소주에 담근 숯으로 바비큐 했습니다.
발단
가끔은 의식적으로 유튜브에서 주락이월드를 본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주락이월드를 봤고, 잭다니엘 여과에 사용했던 숯으로 고기를 구우면 맛이 끝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전개
궁금했다. 술을 품은 숯으로 구운 고기의 맛이 말이다. 그 맛을 나도 맛보리라 다짐하며 곧장 숯과 진맥소주, 가정용 더치커피 기계를 구입했다. 진맥소주는 통밀을 사용해서 만든 우리나라 증류식 소주다. 밀가루로 만드는 빵만큼이나 구수한 풍미를 갖고 있다. 더치커피 기계는 여과에 사용하기 위해 구매했다. 원두를 담는 공간에 숯을 넣고, 물 대신 술을 넣어 한 방울씩 여과를 할 생각이었다.
실험이 완만하게 진행될 거란 기대는 안 했지만, 하루 만에 문제점을 발견할 거라고도 생각 못했다. 애당초 실험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오류가 있었다. 나는 진맥 소주의 풍미를 품은 숯이 필요한 거였지 맑고 투명하게 여과된 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는 것을 다음날이 돼서야 깨닫게 됐다. 한 방울씩 떨어트리는 작업이 어쩌면 불필요한 작업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 통에 숯을 옮기고 진맥소주를 그냥 부었다. 진맥소주에 숯을 넣어 침출 하는 것 마냥 그냥 냅다 들이부었다.
위기
약 1주일간 숯을 절인(?) 후 바비큐를 하러 한강으로 떠났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걱정 반, 설렘 반이었는데 한강에 도착하고 나선 오로지 걱정뿐이었다. 바비큐고 나발이고 날이 엄청 추웠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챙겨 온 재료들이 사방에 나뒹굴었지만 이미 추위에 온몸이 얼어붙었기 때문에 주울 생각조차 못할 정도였다.
절정
문제는 추위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숯이 젖어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 부분은 나의 생각이 정말 멍청해서 벌어진 일이라 할 말이 없다. 알코올이라서 금방 불이 붙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술은 그저 알코올이 있는 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결말
젖은 숯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내와 끈기뿐이다. 1시간 좀 넘게 토치를 이용해 계속 불을 붙인 결과 작은 불씨들이 서서히 숯 안쪽에 자리를 잡게 됐다. 본격적으로 불이 피어오르고 나서부터는 그저 고기를 굽는 것에 열중했다.
앞서 말했듯이 추위에 정신이 팔려 아무 생각이 없었고, 불이 붙지 않는 숯을 보곤 멘탈이 반쯤 나갔었다. 그래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실험이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진맥소주의 풍미가 숯의 연기를 타고 퍼지는 듯했지만 젖은 숯을 말리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술의 풍미가 밴 연기를 고기에까지 담을 순 없었다.
재미는 있었다. 이번 콘텐츠를 준비하면서 난지 캠핑장 바비큐 존의 예약 가격이 싸다는 것도 알게 됐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원활한 실험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다음에는 꼭 성공할 수 있도록 적어도 숯은 꼭 말려가야겠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_어차피, 음식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