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략)
-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명상록>은 로마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야기입니다. 한 마디로 명상록은 누구를 위해 썼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 쓴 책'입니다. 일기장 같기도 하고, 때론 반성문 같기도 합니다. 스스로 경계하고 깨우치기 위해 쓴 자경문(自警文)이기도 합니다.
명상록의 원제는 Τὰ εἰς ἑαυτόν. 라틴어로는 Ta eís heautón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나 자신에게', '스스로에게' 정도가 됩니다.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원제를 알고 나면 이 책이 외부 독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자신을 위한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린비 출판사는 명상록을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는데, 저는 <명상록>보다는 이 제목이 더 이 책의 본질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르다는 말은 '깨닫도록 말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어떤 곳에 가 닿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 내 마음에 닿아 느껴지는 것 모두 이 책에 있습니다.
위 문구는 명상록을 필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어준 결정적인 문장입니다.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열었을 때 처음으로 만난, 첫 문장이기도 했습니다. 이 문장을 읽고 덮어둔 후 다른 코너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음보다 일찍 사라진다'는 말이 마음에 콕 박혀 빠지지 않았습니다. 조금 섬뜩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사물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해서 판단하는 능력이 죽음보다 더 일찍 사라진다고 합니다. 오래 살아도 더 지혜로워질 보장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긴장하라는 겁니다.
이 문구가 저에게 박힌 것은 저 또한 저의 이해력과 판단력에 대해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나이가 많다' 또는 '늙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과거에 제가 경험한 성장경험 중에서 지금 후배들에게 조언 삼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개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아니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나의 성장 스토리'가 지금은 가능하지도, 유의미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난 경험과 지식에 기반한 이해력, 판단력도 갈수록 의미 없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죽음보다 일찍 사라지는 것'을 저는 지식과 경험의 반감기, 그리고 그에 기반한 지혜의 반감기로 읽습니다. 나의 지식, 나의 경험, 나의 지혜. 이것들의 소용이 갈수록 일찍 사라집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여전히 쥐고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말을 줄이지 않으면, 새로운 지식과 경험으로 채워 'Update'하지 않으면 꼰대가 됩니다.
이미 반 이상 줄어버렸을지 모를 '나 자신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2천 년 전 한 현인(賢人)이 묻습니다.
ⓒ 이재상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