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4 to Taipei] 글쓰기를 배우는 중입니다

by 이지현


[D-24 to Taipei] 글쓰기를 배우는 중입니다



매일 하나의 글을 쓰기로 한 것은 나의 성실함을 시험해보고자 함이었다. 성실함은 어떤 일에 대한 진심에서도 나온다 할 수 있으니 그것 또한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오늘은 뭘 쓰지.' 생각하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 자신과 약속한 일이다 보니 더 잘하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지금 보다는 나은 내가 대만에서 글을 쓰길 바랐다. 기초가 없으니 일단은 읽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려왔다. <강원국의 글쓰기>가 그것이었다. 평일에 짬을 내어 읽어보아도 앞부분만 조금 읽을 수 있을 뿐이어서, 주말을 맞이하여 신세 좋게 침대 위에서 진도를 빼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수도 하지 않은 자연인 그 자체로 침대 위에서 책을 읽었다('나는 자연인이다'에 나가도 될법한 비주얼이다). 그러다가 책에 좋은 구절이 눈에 들어와 황급히 노트북을 켰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세계가 있다. 수천, 수만 가지 세계가 있다. 편의점, 커피숍, 제과점, 헬스클럽, 택시 운전, 등산, 바둑, 골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가 있다. 직업의 세계도 있고, 취미의 세계도 있고, 정치, 경제, 문화의 세계도 있다.
나는 쉰 가까이 기껏해야 대여섯 가지 세계만을 경험했다. 증권업계, 홍보업무, 청와대, 출판계, 글쓰기에 발을 디뎌보고 맛을 본 정도가 고작이다. 모든 세계에는 저마다 우주가 있다. 밖에서 보면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 안에 들어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엄청난 사실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세계는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다. p.71

일생을 살면서 우리는 세계를 몇 가지나 경험하고 떠나는가. 아니.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할까. 얼마나 많은 미지의 세계를 남겨두고 떠나는가. p.72


여행을 앞두고 글을 쓰기로 한 것. 언어를 배우기로 한 것.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정치, 경제를 배우려 책을 읽는 것. 그건 모두 내가 가진 시간 동안 최대한의 경험을 하고 싶어서다. 내가 선택한 한 우주를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고자 발버둥 쳐보는 것이다. 시간은 소비재고, 한번 쓰면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실언이다.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가끔 '영원히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곤 하는데, 만약 영원히 살 수 있는 옵션이 내게 주어진다 해도 선택할 것 같지 않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남은 시간을 살고 싶어 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을 미루는 것, 선택을 미루는 것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그런 안일한 생각에 경종을 울린다. 나는 매우 게으른 사람이라, 데드라인이 없으면 무한정 일을 미루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한 사람이다. 죽음이라는 인생의 데드라인이 없다면, 나는 시간을 '채우기'보다는 '때우려(혹은 죽이려)' 할 것이다. 나는 '킬링타임' 이란 단어가 싫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란 사는 동안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산다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주저 없이 독배를 마시고 삶이라는 연습의 시간을 끝냈다. 그래.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물건과 다를 바 무엇인가. 책상, 침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것들은 내가 버리지 않는 이상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땅에 묻는 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건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거니와 낯선 일도 아니지만 (나는 맥북과 아이폰을 볼 때마다 아름답다 생각한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 대부분은 모두 생명력을 지닌 것들이다. 생명이 있는 것들의 속성은 죽음이 있다는 것이다. 한 철 피었다 지는 벚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새벽부터 먼 거리를 달려가기도 한다. 정말 벚꽃을 보고 싶다면 조화를 사 와 화병에 꽂아두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생명의 애틋함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세계가 있다. 모든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선택해야 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니, 더더욱 선택해야 한다. 오늘의 선택이 내 마지막 선택이 될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내일 또 선택할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시간은 한정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가진 시간과 기회를 잘 살아보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언어를 공부한다. 조금이라도 깊게 한 세계를 경험해보고자 한다. 내가 만나는 세계 앞에서 언제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 동안 여러 세계를, 우주를 여행하다가 죽음이 나를 찾아올 때 '아! 잘 놀았다. 이제 갈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삶이라는 연습시간이 끝나면 수많은 미지의 세계를 남기고 떠나게 되겠지만 내가 살았던 세계만큼은 그래도 잘 안다고 할 수 있도록, 잘 맛보았다고. 잘 놀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내가 선택한 세계로 갈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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