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3-27
[D-17 to Taipei] 타이베이의 기억
18년도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 타이베이에 있었다.
당시 직장 겨울휴가를 맞아 방문한 참이었다. 대만의 겨울이 12월부터라고 하니 대만의 겨울에 여행을 갔던 셈이다. 덕분인지 나는 18년도 12월의 타이베이에서 해가 쨍하게 뜬 걸 본 적이 없었다. 여행 전 비가 자주 오니 꼭 우산을 챙기라는 한 블로거의 말에 우산을 챙겨갔는데, 덕분에 요긴하게 썼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비가 자주 내렸고 비가 오지 않더라도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씨가 이어졌다. 그렇게 내 기억 속 타이베이는 '비에 젖은 오래된 건물이 있는 곳'이 되었다.
나는 해가 쨍쨍한 날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름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 낮이 긴 것도 해가 아침에 일찍 뜨는 것도 그리고 밤에 맡아지는 습한 공기의 냄새 또한 사랑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좋다. 가끔 전생에 동남아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반면 추운 날을 매우 싫어한다. 추운 날은 그냥 기운 없이 축축 처지고야 만다. 겨울에는 거의 죽어지내는 편이다. 사람도 덜 만나고 대화하는 텐션도 떨어진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은 싫어'했'다.
비가 오는 날을 매우 매우 싫어했다. 비가 오는 날은 밖에 나가기도 싫었다.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고자 장화를 신고 우비를 입고 다니기도 했다. 우산은 손에 꼭 쥐고 이리저리 비바람을 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타이베이 여행 내내 비가 그리 싫지 않았다. 비가 와 가라앉은 분위기는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었다.
아마 이런 생각을 갖게 해 준 것은 '우라이 온천 마을' 때문일 것이다.
우라이는 타이베이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대부분이 온천을 이용할 수 있는 숙박업소였다. 몇 시간 정도만 방을 빌려 온천할 수 있다는 말에 샤워용품을 모두 챙겨갔다. 내가 고른 곳은 온천을 하면서 흐르는 강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를 고집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는데, 욕조가 히노끼였기 때문이었다. 목욕을 하며 밖을 보니 강에서 온천을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셨다.
목욕을 마치고 출출해진 배를 채울 겸 소시지를 하나 사 먹었는데, 여기서 바로 내 인생 소시지를 만났다. '멧돼지소시지'(나는 왜 산돼지로 기억을 했는지 모르겠다). 소시지 자체의 맛도 너무 훌륭했고, 생마늘을 까지도 않은 상태로 몇 개 집어갈 수 있게 되어있는데 소시지와 마늘의 조화가 매우 좋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소시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하나 먹고 너무 맛있어서 하나 더 사 먹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비가 오는 것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비가 오니 우산을 들고 다녀 불편하긴 했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좋았고, 따듯한 탕이 더욱 따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먹었던 소시지는 더욱 따듯하고 짭조름했으며 물을 한껏 머금은 숲과 나무들은 조금 더 초록색 빛을 띠었다.
생각이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하지만 그 한순간을 만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길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만 그 순간을 만나게 될 때 전과는 영영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대만은 비를 싫어하던 내게 비도 꽤 괜찮은 것이구나를 알게 해 준 곳이다. 이번에 만나게 될 대만은 여름의 모습이라 쨍쨍한 해를 보여주겠지만, 비가 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이제는 정말로 괜찮다.
다만 컨딩과 뤼다오에서 만큼은 쨍쨍한 해를 보여주기를. 그 외에는 바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