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 to Taipei] 위시리스트
서점에서 시집 한 권 사기.
대만에서 하고 싶은 일이야 아주 많지만, 시집 한 권은 꼭 사기로 했다.
원래 시를 잘 읽는 사람은 아니다. 시를 읽을 바에야 소설을 읽는 편이다. 그런데 요새 부쩍 시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글을 쓰면서부터다. 시가 주는 간결함. 그 간결함이 주는 울림이 좋다. 시는 꼭 zip 파일 같다. 압축을 풀어낼 때, 비로소 그것의 내용이 보인다. 그래서 시는 곱씹어 봐야 하는 글이다. 불친절한 글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무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시는 꼭 바다 같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다. 그 광활함이 주는 열린 결말의 끝없는 가능성.
최근에 한 영상 봤는데, 앞부분에 나온 한자로 된 시가 마음에 들었다. 시가 읽히는 소리도 좋았다.
스승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시를 읊는다.
天 一 亮 我 往 窗 外 看
一 整 片 海
날이 밝으면 난 창밖을 봐
그곳엔 바다가 있어
海 很 近
近 得 离 我 只 有 一 条 岸
바다는
내가 해안만 건너면 닿을 것처럼 가까워
岸 上 有 人
错 落 有 致 像 群 花 一 样
해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해
마치 꽃다발의 꽃잎처럼
窗 内
我 用 一 整 夜 与 这 个 女 人 欢 好
방 안에서
난 그녀와 밤새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야
终至 破 晓
我 不 知 道 自 己 是 离 岸 了 还 是 靠 岸
동이 틀 때까지
나는 바다가 가까워지는지 멀어지는지도 모르고 있어
她 似 乎 比 我 成 熟 得 多
我 记 得 她 像 是 长 了 我 两 百 岁
以 至 于 在 灵 魂 上 我 将 永 远 是 低 幼 的
그녀는 어쩌면 나보다 성숙한 것 같아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나보다 200살이나 많았지
영혼 앞에서 나는 언제나 어린아이 일 뿐이야
짧은 한자는 예쁘다.
그래서 시집 한 권 사기로 했다. 내용은 내가 알리 만무하고 그냥 행간이 예쁘게 지어져 있고 수려하게 수놓아진 한자가 가득한 시집을 골라봐야지.
이렇게 행복해질 일을 또 하나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