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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Apr 21. 2023

[D+3] 언제나 넘어지기 전이 제일 무섭다

타이중


 대만 공유 자전거인 유바이크에 꽂혔다.


 어제 오전 퍼붓던 비가 오후에 거짓말같이 그치고 (역시 뭐든 마음을 비워야 일이 되는가 보다) 이미 글도 올려놨겠다 편안한 마음으로 외출을 했다.


 비가 그치기는 했지만 언제 또 쏟아질지 몰라 쪼리를 사려 백화점에 들렀다. 한국에 돌아갈 때 버리고 갈만한 만만한 금액대의 쪼리를 찾고 있었는데 도무지 그런 가격대는 없다. 백화점 내에 스포츠 브랜드 혹은 ABC마트에서 판매하는 것 밖에는 찾을 수 없어 빈 손으로 백화점을 나왔다. 그 이후로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이왕 나온 김에 원래 가보고 싶었던 장소들을 가보았다. 다행히 보려고 했던 곳들이 가까운 지역에 몰려있었고, 하나하나 구경하는 데 크게 시간이 소요되지 않아 오후 시간만으로도 둘러보기에 충분했다. 제일 재미있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유바이크였다. 


 가는 곳마다 유바이크 대여/반납기가 있어 마음 놓고 대여할 수 있었다. 대만의 뜨끈한 공기를 가르며 타는 유바이크는 마약 수준이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자전거로 돌아다녔다. 사실 나중에는 유바이크를 타러 온 건지 구경을 하러 온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유바이크를 빌려 동네를 한 바퀴 삥 돌았다. 다행히 숙소 바로 앞 공원에 유바이크가 설치되어 있어 대여하고 반납하는 데 아주 편했다. 밤까지 쏘다니다 보니 온몸이 찌뿌둥하다. 특히나 안장에 오랜 시간 앉아있다 보니 엉덩뼈가 아팠다. 종아리는 말할 것도 없고. 샤워 후 맥주 한 캔을 마시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열어둔 창문을 겨우 닫고 다시 잠들었다.


 늦잠을 잤다. 8시가 한참 지나 눈이 떠졌다. 몸이 물 먹은 듯 축 쳐 저서 조금 더 누워있기로 했다. 밖은 해가 살짝살짝 비치고 있었다. 9시가 조금 넘으니 배가 밥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허기만 없었다면 조금 더 누워있었을 테다.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아침을 사러 나갔다.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하는 스타일이다(대신 빨리 질린다). 밥을 사러 나왔는데 유바이크가 괜히 눈에 밟힌다. 그래. 저걸 타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밥을 사서 들어오자. 딱딱한 안장에 다시 앉으니 어제의 고생을 잊었냐며 엉덩뼈가 소리를 지른다. 윽. 그래도 일단 페달을 밟는다.


 일단 출발하고 나면 모든 것이 잊힌다. 어깨는 결리고 종아리는 무겁고 엉덩뼈는 쑤신다. 그래도 발을 구르면 바람이 온몸으로 불어온다. 퉁퉁 부운 두 눈덩이가 무거웠지만 부릅 떠보았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마음 가는 데로 구경하다 보니 가고 싶었던 공원이 나왔다. 이왕 온 거 구경하고 가야겠다 싶어 한 시간쯤 구경했다. 해가 뜨니 날이 덥다. 모자를 챙겨 나올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청설모 밥 주는 아저씨. 청설모가 밥 달라며 아저씨 몸에 올라 타 툭툭 치기도 했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청설모가 아주 많다. 사람을 겁내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해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새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이곳에 앉았다가 저곳에 앉았다가 한다. 그저 평화롭다.


 여기까지는 다 좋았다.


 그렇게 공원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배가 고파 어서 아침을 사서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만 자전거는 차와 오토바이가 달리는 도로로 함께 달린다. 자전거는 차가 달리는 차선까지 가지는 않고 보통 오토바이가 다니는 차선으로 다니긴 하지만 아무튼 차도로 달린다. 정신없이 옆을 지나가는 차와 오토바이들 때문에 바짝 긴장을 하고 페달을 밟았다. 겁이 나거나 위험할 것 같은 곳은 멈춘 뒤 숨을 고르고 천천히 달렸다. 다행히 아침밥을 살 가게 앞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아침밥을 포장한 뒤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들떴다. 그러나 숙소까지 가는 차선이 꽤나 복잡하다. 일단 인도로 올라가 어떻게 가야 가장 안전할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려 하는데 사람이 건너오는 게 보였다. 비켜줘야 하는데. 자전거를 뒤로 무르려 하는데 워낙 무거워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자전거를 끌던 몸이 무게중심을 잃었다. 쿵. 자전거 위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다행히 어디 까지거나 크게 다치지 않았다. 반바지를 입은 터라 뒤꿈치 부분이 조금 빨개진 것 빼곤 멀쩡하다(나중에 보니 무릎 쪽에 멍이 들긴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까운 곳에 바로 자전거를 반납했다.


 사실 타는 내내 '넘어지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서 바짝 긴장하며 자전거를 몰았다. 무슨 일이든 사고는 방심할 때 일어나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매 순간 하다 보니 자전거를 타는 내내 계속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아예 넘어지고 나니까 이상하게 속이 후련했다.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ㅡ영화, <올드보이>



 뭐든 일어나지 않은 일이 제일 무섭다. 가장 무서운 순간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바로 전이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다치거나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다. 이만하길 감사하게 여기며 당분간은 되도록 걸어 다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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