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난-가오슝
지금은 가오슝에 있다.
걷는 곳마다 박물관이었던 타이난에서의 나날들을 잠시 되새겨 본다.
간추린 것만 이 정도다. 하루에 무조건 한 곳씩은 박물관에 간 것 같은데도 못 가본 곳이 남았다. 괜히 문화 수도가 아니었다. 놀라운 점은 남녀노소, 몸이 불편하신 분들도 많이들 오셔서 문화생활을 즐기고 계셨다.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휠체어를 타고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시는 분들을 잘 보지 못해서 그런지 내게는 (좋은 의미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도 약자에 대한 배려가 조금 더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타이난처럼 작은 도시에 이렇게 많은 박물관이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역사박물관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전시회가 열리고, 한 곳 한 곳 모두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탓인지 타이난은 개성 있는 숙소가 많았다. 높은 건물이 없는 대신 골목골목 숨겨진 예쁜 장소들을 찾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잠시 시간이 느리게 가는 여유가 필요하다면 타이난은 아주 매력적인 여행지가 될 것이다.
그렇게 타이난에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아침, 해가 쨍쨍하다. 그렇게 뜨거워지는 해를 느끼며 가오슝으로 향했다. 타이난의 기차역은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보이는 곳이었다. 표 자동판매기가 있어 표를 사는데 구매 방법이 살짝 이상했다. 빠른 구매를 누르니 도착역 선택 사항에 가오슝이 보이지 않았다. 몇 번 버벅거리다가 처음부터 역을 검색해서 표를 사는 방법이 있길래 가오슝을 검색했다. 나오지 않던 기차 시간표가 주욱 나왔다. 제일 빠른 표를 구매했다. 자유석 표였고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빈자리에 그냥 앉아서 가면 된다. 가격은 68위안, 소요 시간은 대략 1시간.
그렇게 1시간을 달려 가오슝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확실히 대도시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일단 역이 으리으리하다. (타이난에서 와서 더 그럴 수도. 타이중에서 왔으면 그렇게까지 크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거다.)
드디어 이번 대만 여행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가오슝역에서 숙소가 있는 옌청푸역까지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지만 환승을 해야 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환승을 하는 건 언제나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이다. 다행히 MRT 옌청푸 역에서 숙소는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와. 기대하지 않았는데 호스텔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보얼예술특구를 주로 돌아볼 예정이라 숙소도 주변에 잡았는데, 사실 위치가 마음에 들어서 예약한 터라 시설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부가 매우 쾌적했다! 지금이 여행 비수기라 그런지 내부에 사람이 많이 없어 더 좋았다.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루프탑 테라스다. 잘 가꾼 식물들이 불어오는 바람의 손길에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아, 좋다. 역시 꽃보다는 초록 잎 식물이 좋다.
잠시 앉아있다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보얼예술특구까지 걸어가 보았다.
와! 바다다!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 너무 반가웠다. 역시 나는 항구도시랑 잘 맞는 것 같다. 바다를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산에 살아서인지 이상하게 가오슝에 오니 마음이 푸근하다. 대만에서 가오슝의 포지션이 부산이라던데, 과연.
가오슝 음식도 입에 잘 맞는다. 윗지방 보다 확실히 음식 간이 세다. 마늘과 고추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괜히 부산과 비슷해 보인다.
앞에는 바다, 뒤에는 공원이 있다. 피크닉 나온 가족이 참 부러웠다. 자리 깔아놓고 낮잠 한 숨 자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아쉽게도 돗자리가 없었다.
확실히 더 남쪽으로 오니 해가 더 뜨겁다. 찍은 사진들만 비교해도 가오슝이 확실히 푸릇푸릇하다.
더 남쪽으로 올 수록 마음에 드는 건, 내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