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롄-타이베이
과연 보물섬이라 불릴만하다.
타이베이만을 보곤 대만은 중국과 일본이 섞여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했는데, 대만을 한 바퀴 돌아보니 중국의 대자연과 일본의 문화, 동남아(특히 필리핀)의 바다가 한 데 모여있는 느낌이다. 일본과 중국(간판 때문에)의 느낌은 어느 지역에서나 느낄 수 있고, 깎아내린 것 같은 타이루거 협곡을 보고 있으면 중국 장가계가 부럽지 않고 푸르른 바다와 작렬하는 태양,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자연과 보석 같은 곳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 동쪽 지방에서는 흡사 필리핀 같은 동남아 휴양지에 온 기분이 든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번 대만 일주를 통해 내가 대만 동부 지역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컨딩을 기준으로 오른쪽, 뤼다오-타이동-화롄 라인이 좋다. 이번 여행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사실이다. 이렇게 내 취향 하나를 더 발견했다.
타이동도 그렇지만 화롄도 정말 준비 없이 왔다. 그렇지만 어느 곳보다 즐거웠고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어디든 일단 어떤 삶 속에 들어가 보면 거기 사는 사람들의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인터넷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촌락이어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지혜 한 가지쯤은 필히 발견하게 된다. 인터넷은 정보를 얻을 수는 있지만 이러한 지혜는 얻을 수 없다. 지혜는 경험으로써 얻는 것이다.
화롄 타이루거에 가보지 않았다면 타이루거 버스를 운행하는 310번 기사 아저씨의 드라이빙 솜씨가 얼마나 기가 막힌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라면 이미 운전대를 놓고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사님은 조금만 삐끗해도 천길 낭떠러지인 그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가는 것이다. 작은 승용차도 아니고 차 중에는 가장 몸집이 큰 그 버스의 운전대를 잡고. 그런 길을 운전하면 예민해져서 신경이 날카로워질 법도 한데, 차에 올라타는 승객마다 웃으며 '니하오' 하고 인사를 해주던 기사님. 그의 친절함과 장인정신은 인터넷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그렇기에 여행한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은 절대의 지혜의 바다는 될 수 없고, 정보 없이 어떤 곳에 도착하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아서) 어떻게든 적응하게 마련이고, 나름의 즐거움을 찾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그들의 질서 그리고 그들의 지혜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나름 열심히 준비한 서쪽 지방에서의 여행이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던 것은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가 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어디 어디 갔으면 거긴 꼭 가야지' 하는 그런 정보들. 인터넷에서 본 정보와 실제 내가 본 것들을 그저 매치시키기 바빴던 것이다. 시험지와 답지를 맞춰보듯이.
너무 오랜만에 떠나는 배낭여행이라 나도 모르게 남의 시선을 의식했던 것 같다. '그렇게 준비도 없이 가서 되겠어?', '대체 뭘 보고 온 거야?' 누군가 그렇게 꾸짖을까 봐 잡다한 정보를 모두 끌어모았다. 어떤 확고한 목적이나 취향 없이 모아진 정보는 결국 오염된다. 더 이상 쓸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대만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서양 친구들에게 앞으로의 여행 계획을 물어보면 대부분 '모르겠다' 답했다. 그들에겐 아무런 계획 없이 오는 게 보통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도 계획 없이 다니는 여행이 더 즐겁고, 자유롭다. 앞으론 누군가 대책 없이 떠나는 나를 보고 한마디 말이라도 얹으려 할 때면, '이게 유로피안 스타일이야!' 소리칠 테다.
그냥 이 순간만을 즐기기. 이 순간에 충실하기. 모든 정보는 버리고 그것만 남기기로 했다.
드디어 대만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타이베이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