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7. '제2의 나'를 만드는 MZ세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뭘까? 가치관, 취미, 좋아하는 영화 등으로도 나를 설명할 수 있지만 처음 본 사이라면 단연 '직업'이 나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직업이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채우는 것은 대부분 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지 먼저 물어본다. 만약 누군가 디자이너라고 한다면 그의 모습 속에서 개성을 쉽게 발견할 것이고, 누군가 변호사라고 한다면 그의 모습 속에서 원리 원칙을 중시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낼 것이다. 이렇게 이름 앞에 붙을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이 직업 하나로 수렴하는 순간, 우리는 그 속에서 고정관념의 울타리를 만든다. 즉 별로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남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나를 쉽게 설명하는 직업 만들기를 요구받았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서 장래희망 칸은 증명사진 바로 옆칸에 만들어져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을 굳이 찾아낸 듯, 장래희망 한 가지를 가진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전통적인 사회의 방식은 그랬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적으로도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업무시간은 줄어들고, 출퇴근 시간도 없어졌다. 일 외에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난 것이다. 남은 시간에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쓸지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 자가격리 시간을 보냈다. 내가 관찰한 활기 넘치는 MZ세대들의 선택은 '부캐(부캐릭터)' 또는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이었다. 즉 인터넷 세상에서 '제2의 나'를 만드는 것이다. 직업 외에 유튜브를 하거나, 패션 브랜드를 만들거나, 팟캐스트를 하는 등이다. 이러한 부캐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점점 단 하나의 직업에 따라붙는 고정관념을 믿기 어려워진다. 누가 변호사는 원리원칙주의자라고 했는가. 주말엔 그도 프리스타일 댄서일 수도 있는 것을!
여러 방면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표현 방식을 넓혀갔다. 그들의 확장된 표현들은 시대상에 따라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서로에게 영감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표현법을 늘려나간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유튜브에서 음악을 하는 것도 다 일련의 부캐다. 부캐로서의 활동들은 직업처럼 나에게 일정한 돈을 가져다 주지는 않지만 뿌듯함과 자기 효능감을 선사해준다. 이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 힘이 되고, 또 나 스스로를 확장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시작하는 데에 딱히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림이나 캘리그래피 같은 작은 취미라도 공유되기 시작하면 혼자 할 때보다 더 영감을 받고 성장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필드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인터넷˙모바일 공간에서 현실 속 삶의 가능성까지 엿볼 수 있다. 만약 취미로 뜨개질을 하는 사람이라면 인스타그램으로 뜨개질 물건들을 팔아볼 수도 있다. 취미로 여행 영상을 올리던 사람이 여러 언론에 소개가 되어 전업 여행 유튜버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부캐를 만들어 활동하는 형식으로 활동의 리스크는 줄이고,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둘러볼 수 있다. 빠른 시대변화와 불확실함 속에서 MZ세대들은 한 우물을 파기보다는 여러 가지 분야에 마음을 열고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이제는 어떤 일을 하냐는 질문보다는, 어떤 부캐가 있냐는 말이 더 와 닿는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