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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Apr 01. 2021

목련이 진 자리에

서프라이즈!

 1. 봄꽃 중에서 가장 잔인한 꽃은 목련이다. 먼저 목련이 '봄꽃'인가에 대해서 먼저 토론해보아야 한다. 이유는 그가 겨울의 끝을 붙잡으며 피어나기 때문이다. 아직 봄이라기엔 어설프고, 또 겨울이라기엔 따뜻해져 버린 공기 속에서 목련은 흐드러지게 모습을 빛낸다. 그리고 머지않아, 개나리가 모두 피기도 전에 이미 목련나무는 활개 치는 꽃잎을 탈탈 털어낸다. 바닥으로 툭, 또 하나 툭. 고급 실크처럼 우아한 진주빛의 목련은 바닥에 닿자마자 이리저리 구르며 상처를 새긴다. 공기는 더욱 따뜻해지고, 완연한 봄이 온다. 그러나 목련은 벌써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발가벗고 있다. 개나리도 벚나무도 몸을 단장하는 만물 소생 가운데서 목련은 홀로 다 끝난 파티를 정리한다. 목련을 탓해도 어찌할까. 그의 생태가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봄꽃 아닌 봄꽃이 미련하다, 미련하다.


 2. 벚꽃비를 맞는다. 꽃가루로 칼칼한 목과 간지러운 코를 쓰윽 문지른다. 멋들어지게 피어난 벚꽃을 보면서 기쁘면서도, 벌써 바닥에 한가득 떨어진 잎을 애도한다. 봄은 가끔 너무 아름다워서 두렵다. 정확히는 봄이 품 안에서 떠나는 모습이 두렵다. 목련, 개나리, 벚꽃이 차례로 피면서 봄을 맞이하는 모습은 모두가 사랑한다. 하지만 그 이후에 떨어지는 잎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감히 추측 같은 것도 없다. 

 "오늘 남부지방에는 벚꽃이 모두 떨어집니다. 꽃잎은 다음 주 중에 전국적으로 모두 떨어져 나무는 휑하게 가지만 남아있을 것으로 보이며…"

 이런 예보를 하는 기상캐스터는 없다. 어쩜 개화(開花)라는 단어에는 반대말도 없다.


 3. 봄에 대한 감정들이 점점 무뎌졌다. 아직 가지 위에 버티고 있는 벚꽃들도 단지 일상의 병풍 정도로 남았다. 그리고 나는 봄 특유의 미지근한 밤공기를 맡으며 걸었다. 

 전에 목련을 봤던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목련나무는 만개한 꽃잎이 떨어진 지 한 달만에 새롭게 잎을 드러내고 있다. 놀랍다. '너네 끝난 파티 아니었어?' 하지만 그는 말을 되받아친다. '이게 바로 봄이지!' 푸릇푸릇한 연두콩 색깔의 작은 잎들이 피었다. 

 한 달 전 목련이 이미 떨어져서 길바닥을 애처롭게 굴러다닐 때, 나는 그가 앞으로 일 년을 꼬박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적으로 단편적인 과오였다. 목련나무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목련은 푸른 잎도 부지런히 피워내고 있었다는 걸 벚꽃이 지는 자리에서 보았다. 

 옆에서는 햇빛을 잔뜩 받은 진한 초록을 뽐내는 나무들이 하나 둘 보였다. 원래 이 나무가 이 자리에 있었나? 전혀 몰랐다. 목련의 결실만을 구경하느라 미처 못 봤다.


 4. 문득 꽃피는 봄이 지나는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은 흐르고 봄꽃이 떨어지면 또 다른 식물들이 빛을 발하게 되니까. 세상은 공정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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