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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Apr 18. 2021

전례 없던 카페 노숙

캐나다 빅토리아

 캐나다는 사실 여행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 달간 어학연수로 다녀온 곳이다. 내가 간 지역은 작은 마을에 가까웠다. 대학교가 딱 하나 있고, 작은 다운타운이 있었다. 지역 이름은 캠룹스. 대도시인 밴쿠버와 버스로 약 5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한국으로 치면 부산과 서울 거리 정도 되는 곳이었다.


호수가 세 개나 있지만 기후가 건조해서 산이 메말라 있었다. /캠룹스



 한 달간 캠룹스에 머무는 사이, 주말에 시간을 내어 여행을 다녀왔다. 전혀 계획된 일은 아니었으나 원래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괜찮았다. 2박 3일 치 짐을 매고 나선 뚜벅이 배낭여행이었다. 밴쿠버에서 하루, 밴쿠버에서 배를 타고 한두 시간 정도 움직여야 도착하는 빅토리아에서 하루를 보냈다.


 루트는 이러했다. 캠룹스에서 밴쿠버로 다섯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서, 그다음 날 밴쿠버에서 빅토리아로 보트를 타고 건너야지. 하지만 일정은 처음부터 삐끗 댔다. 밴쿠버로 향하는 버스시간을 오해한 탓이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어차피 여행도 전날에 계획한 것이었으니까. 비는 시간에는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출발했다.



푸르른 산과 미치도록 산뜻한 여름 /밴쿠버


 밴쿠버는 항구도시다. 나의 고향인 부산처럼 물과 가까운 곳이었다. 밴쿠버의 물가에 다다르는 순간 코끝이 찡했다. 비릿한 바다향이 고향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푸릇한 산과 함께 펼쳐진 물가가 나를 반겼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지금 생각해보면 유독 여행에서 특이한 일이 많았다. 밴쿠버에 도착하자마자 학교 친구를 만나는가 하면, 길을 걷다가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친구(?)도 만났다. 한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얼굴을 본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중에서도 여행 중 가장 전례적이었던 일은 카페 노숙과 그 여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여행 2일 차 저녁이었다. 페리를 타고 넘어와서 빅토리아에서 1박을 준비했는데, 미리 결제했던 숙소가 취소되는 바람에 밤 11시에 갑자기 노숙인 신세가 되었다. 아무리 주변 숙소를 수소문해도 여행 성수기다 보니 전혀 공석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급히 주변에 있는 24시간 운영 카페를 향했다. 가는 길은 어찌나 컴컴하고 텅 비어있는지, 혼란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숙소가 취소된 데에 대한 짜증을 담은 욕과 혼잣말도 덧붙였다.


20분을 꼬박 걸어 도착한 24시간 카페 /빅토리아


 카페에 도착하니 왠지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방금, 버스에서 마주쳤던 얼굴이었다. 잠깐이었지만 반가운 나머지 아는 척을 했더니 그들도 나를 본 것을 기억하는 듯 맞이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방금 처음 만난 네 명의 사람과 함께 새벽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밴쿠버행 페리를 놓치고, 숙소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밴쿠버에서 빅토리아로 왔고, 그들은 빅토리아 여행을 모두 마치고 밴쿠버로 향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이례적인 상황이 절망적이기보다는 재밌고 흥미로웠다.


 밤샘 각이었던 그날 밤,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그들과 합석했다. 함께한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온 워홀러 한 명, 멕시코에서 온 대학생 친구 한 명, 필리핀에서 온 엄마와 어린 아들이 함께 있었다. 새벽 내내 한 숨도 못 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해 뜨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았다. 페리 항구로 향하는 그들을 배웅하며 아쉬운 포옹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나의 여행 3일 차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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