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사랑

ep 15. "갈 때 고구마 맛탕 사갈까?"

by 이진

 3일 전부터 배가 슬슬 아프다. 급체라고 하기엔 덜하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기엔 찝찝하다. 소화가 안되나 싶어서 며칠 전부터 까스 활명수를 마시고 있다. 아침도 먹기 전인 지금도 내 옆에는 까스 활명수 병이 놓여있다. 평소 우리 집에는 까스 활명수가 몇 개씩 비치되어있다. 속이 안 좋을 때 병원이나 약국에 가기보다 집에서 간편히 꺼내 마시면 효과가 빨라서 좋다. 다 떨어졌다 싶으면 엄마가 꼭 사 오신다. 한 번에 무더기로 사 오는 편이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다 마시게 되는데, 이번에는 내가 며칠째 배아픔을 호소하고 먹다 보니 약이 다 떨어졌다는 걸 바로 알고서 또 한 통을 사 오셨다. 그렇게 나는 편하게 엄마가 사 온 약을 마실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나의 방 책상에 기모 나시티가 두 장 놓여있었다. 추워지는 날씨를 위해 엄마가 사 온 것이다. 엄마는 이토록 내 생각을 해주신다. 밖에서 누군가를 문득문득 생각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독자님들도 한 번 떠올려보자. 일상 속에서 어느 정도로 가족들을 생각하며 사는지... 사실 가족뿐 아니라 누군가를 챙기는 게 습관이 되지 않으면 어렵다. 매일 보는 가족이라면 더 소홀해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엄마의 이러한 꾸준한 사랑이 더욱 울림을 준다. 너무나도 빤히, 엄마의 존재가 나의 일상에 많은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나는 언니가 두 명이 있다. 최근에는 저녁에 큰언니에게 전화가 오더니, 집에 갈 때 고구마 맛탕을 사 갈까 물어보았다. 언니가 퇴근 후에 백화점을 들렀다가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인 고구마 맛탕을 파는 것이 생각나서 내게 물어보려 전화를 한 것이다. 언니는 이렇게 항상 물어보는 편이고, 엄마는 그냥 엄마 취향대로라도 사 오는 편이다. 어쨌든 두 명 모두 가족을 생각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글을 놓고 보니 나는 얼마나 가족을 생각하는가 돌아보게 된다. 내리사랑은 있고 올림 사랑은 없다더니 그게 정말인 것 같기도 하다.


 집에서 셋째인 나는 정말 "챙김"을 많이 받고 자랐다. 언젠가부터는 그런 과잉보호로 인해서 홀로 속을 썩은 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려고 한다. 엄마의 삶을 봤을 때, 또 언니들 각자의 삶을 봤을 때, 그들은 나조차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내가 아무리 밖에서 사람을 패고 다니더라도 집에만 오면 엄마 딸이고 언니 동생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사랑'은 주로 미디어를 통해 대단히 크게 포장되고 획일적으로 주입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져 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게는 대단하지 않은 것이 더 사랑에 가깝다. 마치 추운 날에 기모 나시티를 사 오는 엄마의 마음처럼, 좋아하는 음식을 사 갈까 묻는 언니의 전화처럼... 무의식에서 우러나는 말과 행동이 진심이고 곧 사랑의 척도다. 이 세상 어느 누군가처럼 꽃다발을 가져다 바치고, 수 백장의 편지를 쓰고, 울며 사랑을 말하는 것보다, 일상적으로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 꾸준한 실천이 궁극의 사랑이다. 꾸준함, 그 중심에 바로 사랑의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사랑만큼 진득하고 또 떼어놓기 어려운 사랑은 정말 어디에도 없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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