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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Jan 17. 2023

우리에겐 빛과 공기가 필요해

생의 이해관계

식집사인 나는 반려식물로 무늬스킨답서스를 키우고 있다. 무늬스킨답서스는 시원시원하고 넓적하게 뻗는 이파리와 그 위로 그려지는 아이보리 빛깔의 무늬가 특징인 식물이다.

 몇 년째  모서리에 두고 화분을 돌보면서 나는 것의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이파리가 절대  방향으로는 나지 않는 것이다.

 잎을 매단 줄기는 벽을 등지고 점점 둥글게 말렸다. 마치 앞 구르기를 하듯이 허리를 굽힌 모양이 되어갔다. 이파리는 내가 충분히 눈 맞출 수 있는 곳으로 새순을 뻗었다. 말하자면 공기와 빛이 잘 통하는 방향이었다.

이파리는 내가 충분히 눈 맞출 수 있는 곳으로 새순을 뻗었다.




 한 번은 창문이 없는 4평 쪽방에서 트리안을 키운 적이 있다. 트리안은 작고 동글동글해 귀여운 이파리 모양이 특징인 식물이다.

 내가 트리안을 키웠던 곳은 전등을 끄면 완벽하게 어둠으로 뒤덮이는 암흑지대였다. 화분을 데려온  2주쯤 되었을까. 푸릇한 빛깔을 뽐내던 아기자기한 이파리가 점점 탁해지고 회색빛을 띄기 시작했다. 수경재배를 하려고  묻은 뿌리를  닦아서 담아두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먼지 같은 찌꺼기가 둥둥 떠다녔다. 마치 식물 뿌리가 침을 뱉어놓은  같았다.

 처음에는 트리안이 유난히 잎이 작아 약한 식물이라 그런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엔 보다 더 무디게 생긴 홍콩야자를 데려왔다. 하지만 씩씩하게 이파리를 뽐내던 홍콩야자도 트리안과 비슷하게 명을 다했다.


 식물은 생존에 있어서 빛과 공기를 요구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인간도 식물들처럼 햇빛과 같은 따뜻함이 필요하다. 순환하는 공기와 같은 인간적인 소통도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갓난아기는 애정과 소통을 포함한 모든 것을 보호자에게 의지한다. 포유류 동물 중에서도 가장 무력하게 태어나 10년이 넘는 세월을 부모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인간의 형질 때문이다.

 만일 부모의 사랑이 암흑의 4평 쪽방처럼 그늘지거나, 오히려 너무 강하게 내리쬔다면 아이는 성장할 수 없다. 또한 보호자와 소통이 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긴다.

 아기는 울면 안아 달래줄 사람이 필요하다.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올 때나, 배변을 할 때도 그렇다. 그래서 아기는 보호자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울음소리를 크게 내거나, 방긋 웃는 표정을 짓는 식이다.

 햇빛이 들고 공기가 통하기 쉬운 방향으로 새순을 뻗는 나의 반려식물처럼, 갓난아기는 온몸을 다해 보호자의 애정과 관심을 찾아 나선다.




 채널A 상담 예능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는 여러 가지 육아 고민을 가진 부모들이 출연한다.

 금쪽이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왜 그토록 심하게 떼를 쓰고, 종종 부모를 해하고, 학교 친구들과 원활히 지내지 못하는지 고민한다. 여기서 금쪽이란 부모와의 관계 또는 사회적인 상황에서 적절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말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는 부모와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보고, 상담하고, 대처법을 제시한다.


 영상 속에서 금쪽이들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회차가 흐를수록 아이들에게서 어딘가 비슷한 점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모두 자신이 바라는 사랑과 관심을 보호자에게서 받지 못해 불만족스러운 상태였다.

 금쪽이들의 불만족한 감정상태는 왜곡되어 나타났다. 집이 떠나갈 듯이 울고, 소리를 지르거나, 몸을 뒤틀며 심하게 떼를 썼다. 그런 난폭한 모습과는 달리, 사실 마음 속으로 아이들은 보호자의 관심과 애정을 바라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금쪽이들의 부모조차도 유년시절에 겪은 아픈 기억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는 어른이었고 부모가 되었지만, 그들의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상처는 마음 한 켠에 결핍으로 남아있었다. 부모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특징적인 행동 패턴으로 드러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이들에게 똑같이 대물림되고 있었다.


 보호자에게서 사랑과 소통을 전적으로 의지하던 유년시절이 지나도 우리는 부모와 맺은 애착경험에 매달려있다.

 인간은 태어난 후 세 살까지의 경험으로 애착 관계 패턴을 형성한다. 어른이 되고 난 후 맺는 관계의 심리적 패턴도 이때 결정된다. 어린 시절에 우리가 겪는 관계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전인생을 감싸고 있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은 마치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리는 덩굴식물의 생장과 같다. 벽을 모조리 덮은 덩굴식물이 이제 와서 강아지풀이나 장미꽃으로 변할 수는 없지만, 잎과 줄기를 서서히 따라가다 보면 뿌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뿌리는 바로 현재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의 패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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