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을 욕망하는 시대

ep 71. 이 혼란 속에서 '나의 것' 만들기란

by 이진

 근 몇 년간 여러 가지 매체가 발달하면서 남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들여다보기 정말 쉬운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100개의 정보를 찾으면 100개 모두 미세하게 다른 점이 있고, 그들의 첨언까지 듣다 보면 이 사람 말도 일리가 있고, 저 사람 말로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 이유는 실제로 그들의 말이 모두 맞기 때문이다. 저 사람의 인생에서는 저 말도 맞고, 이 사람의 인생에는 이 말도 맞다. 특히 요즘 나는 돈 관리에 관심이 많다 보니 20-30대의 돈 관리에 관한 정보를 많이 찾아보는데,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적은 돈이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시드머니가 모일 때까지 안 쓰는 게 정답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정보를 듣는 입장에서는 혼란한 것이 당연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귀동냥해서 듣다 보니 내 욕망의 출처에도 의심이 생기기도 한다. '타인의 욕망이 곧 내 욕망이다'라는 유명한 어구도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사고 싶다고 하는 물건은 나도 사고 싶어 지는 사람의 심리랄까.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의 메커니즘을 꽤나 경계하고 있다. 나의 욕망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찾아내고 따져보면서 이것이 나와 맞는 생각인지 아닌지를 찾는 일은 필수다.


 며칠 전에는 평소에 구독하던 유튜버의 재정 계획을 보고 나서 '나도 뭐라도 투자를 해야 하나' 싶은 적이 있었다. 나는 재정 측면에서 시드를 모아두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돈을 일정 부분 모을 때까지는 안 쓰고 저금하는 것이 결국 투자라는 관점에 많은 부분 동의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을 해놓고 나름의 재정계획도 세워두었지만 스멀스멀 남의 욕망을 욕망하게 되는 것을 느낀 것이다. 또 어떤 유튜버는 비트코인으로 돈을 300배 벌었다는 말을 하길래 괜히 솔깃하는 등, 때도 무르익지 않은 감이 떨어지려고 발버둥을 쳤다.




 계속해서 나의 생각을 정화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남의 생각이 들어앉아서 앵무새가 되는 꼴을 보기는 시간문제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일종의 유형을 보는데 가끔 어떤 사람이 말을 할 때 남이 말하는 의견을 갖다 붙여서 복사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인풋은 가능했으나 그것을 자신의 말로 만드는 데에 노력을 기하지 못한 서툼이 드러나는 때다. 그러다가도 종종 자신의 진심을 얹어 표현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경이롭기도 하고 그들의 작품과 이야기는 매우 편안한 느낌을 준다. 결국 이는 나만의 생각을 얼마나 잘 소화해서 남들에게 전하는 가의 문제이다.


 사회 속에서 욕망이 공유된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타인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되는 것도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만 있을 뿐이지, 우리는 서로를 거울로써 투영하기 때문에 물론 그럴 수 있다. 단지 남을 신경 쓰면서 동시에 나에게 완전히 집중하는 게 힘들다는 게 문제가 될 뿐이다. 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에 휘둘리거나 그들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진짜 나만의 생각을 소중히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이 나의 생각인지 아는 것부터 참 애매하지만, 그래도 인지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다른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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