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2. 양귀자 소설 '모순' 감상기
친구의 추천을 받은 지 몇 주가 지났을까, 언니도 친구에게 추천을 받아서 빌렸다는 책이 양귀자의 '모순'이었다. 98년도에 출판된 이 소설이 갑자기 나에게 불쑥 드러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약간의 궁금증을 가지고 소설을 읽기 시작하였다.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 중에 하나는, 소설 내용을 읽으면서 책 제목의 실마리를 찾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책 '모순'은 그 점에서 매우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진 책이다. 삶도, 우리도, 모두 모순 덩어리라는 것.
주인공 안진진은 어느 3월의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라는 말을 부르짖는다. 소설의 초반부터 전혀 정황 없이 내뱉은 주인공의 말 한마디가 나의 흥미를 돋우기 충분했으나, 뒤에 이루어지는 이야기는 다소 평범하게 흘러갔다. 25살 여자의 1인칭 시점 이야기, 주로 가난과 부끄러움에 대하여, 맘에 들던 두 남자에 대하여, 가족의 상황에 대하여 올곧게 서술하는 모양이 극적인 묘사가 없어서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패턴에는 눈을 뗄 수 없었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단상, 아들만 챙기는 집안 분위기, 안진진의 약간의 합리화와 마지막 선택 등. 모든 것이 이해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뻔한 묘사들이 있었다. 현실의 삶을 드러낸다는 의미가 있었으리라.
알맞은 크기의 책, 하얀색 표지, 보기 좋게 적당한 활자 크기 등 책 전체가 안진진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담아낸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화자가 툭툭 내뱉는 삶의 정수에 관한 구절들이었다.
* 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
*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 낸다.
*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작가가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소설 전체를 감싸는 평이한 일상의 묘사가 아니라,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모순되는 주인공의 생각과 선택들이었다. 사실 근본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삶 그 자체가 가진 모순도 있다. 삶 속에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약간의 불행 속에서 생에의 의지와 힘을 얻으며, 오히려 굴곡 없이 평이한 인생이 가장 가련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구체적인 스토리는 책을 보아야만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 책은 매우 잔잔하게 흘러가는, 별거 없는 스토리가 모여서 별 것이 되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