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공존하기

ep 75. 주체로서의 기쁨

by 이진

 달리기를 할 때 한 번은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정말 이 순간이 영원하게 느껴진다'. 무한히 확장하는 현재의 엄청난 에너지를 느끼다 보면, 달리기에 집중하는 것 외에 나라는 세계에는 아무런 제약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의 확장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나 자신의 확장을 느끼는 것일까? 답은 후자임에 틀림없다. 이곳에는 항상 가로등 불빛이 있었고, 매번 불규칙하게 바람이 불었고, 언제나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 갑자기 순간을 무한하게 느낀 이유는, 나 자신이 정말 그 순간에 영원으로 수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수많은 세상의 오류/미덕 또한, 세상 그 자체의 탓/덕이 아닐 수도 있다. 즉, 특정한 경험과 시선에 따라 객체인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시선과 행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나 자신이 세상을 주시하는 주체적 존재가 되면 놀랍게도 이 순간은 한없이 영원해진다. 세상과 내가 무한히 공존하는 느낌, 그것은 유한한 인간인 우리에게 아마도 가장 큰 기쁨일 테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자신을 남의 시선에 대입해 보는 것이다. 남의 시선과 관점을 자신의 것으로 치환할 때, 우리는 공공연히 존재하는 사실-자기 자신-을 없는 것 마냥 대우하게 되므로, 이 상황에는 필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난다. 만약 모든 개인이 언제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과 주체성을 갖고, 뜻을 형성하고 표현할 줄 알고, 망연히 두리번거리지 않고 똑바로 세상을 주시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을 신경 쓰기보다는 남을 신경 쓰느라, 또는 남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보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주체로서의 자신이 되면서 얻게 되는 책임이 두렵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독립하는 것은 필연적인데, 이는 우리가 가장 꺼려하는 행동 중 하나다. 혼자가 된다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 '두려운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얼마나 큰 깨달음과 행복과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는지 아는가?





 배려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도 결국 자신의 관점에서 남에게 배려를 전한다. 그러니 인간이 이타적이라는 것은 약간의 오류가 있다. 반면 이기적인 것은 왜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가장 쉽게 존중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이나 기부를 하는 사람은 그 스스로도 기쁨이나 뿌듯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기쁨도 없다면, 이타적이라 여겨지는 봉사활동도 그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희생 없는 공존, 윈윈(win-win)이다. 주체적 인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는 윈윈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반면 종종 남을 배려한다면서 자기 자신을 1번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본인을 존중하지 않는 과오를 통해 전 인류를 모독하는 것이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남에게까지 해를 끼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더 우리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남을 배려하는 것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삶은 달라질 것이다. 물어뜯고 경쟁하지 않고, 타인을 소중한 동료로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할 수 없는 행동은 남에게도 할 수 없으므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네가 나고 내가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