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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May 15. 2021

카페 알바 마지막 장

열 달 동안 고생 많았어 커피몬


작년 7월부터 시작한 카페 알바의 마지막 장.




한 달 전 마지막 근무 날짜가 정해졌지만 왜 이렇게 그날이 더디게 올까라는 생각뿐 섭섭하지는 않았다. 그 한 달 동안 새로운 직원들 교육시키느라 일이 많아져서 그런가 배로 피곤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직원을 3명을 새로 뽑았는데 교육은 전부 내가 시켜서 유튜버처럼 영상을 찍어서 단톡에 올렸다.


"이 그릇을 쓰시면 됩니다." "반죽은 이렇게 자르듯이 섞어주세요." 영상 찍으면서 내가 뭘 하고 있나 싶기도 했지만 같은 말을 3번 반복할 바에는 한번 유튜버 체험하는 게 나으니까.



 마지막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나는 고요한 새벽 하얀 천장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섭섭함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일 그만두면서 섭섭한 걸 보니 그래도 내가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예전에 일했던 프랜차이점 카페를 그만둘 때는 "도비는 자유예요!!" 하면서 상쾌하게 그만뒀는데.



평소 출근시간보다 1시간 먼저 나와서 근처에 있는 서점에 갔다. 사장님한테 줄 선물을 사러 갔는데 당연히 있을 거라고 했던 책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구병모 작가님의 책이 없다니? 뭐 이런 서점이 다 있나... 다른 작가님 책까지 해서 후보를 3개 정도 생각하고 갔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냥 베스트셀러를 한 권 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사고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나의 안일함을 탓했다. 물론 이번 주에 따로 하는 일이 많아서 신경 쓸 수 없었던 것도 있지만.


그리고 타르트를 사려고 자주 가는 타르트 가게를 갔는데. 내 앞에 여성분이 타르트를 쓸어 담고 있었다. 내가 살 수 있는 게 정말 하나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옆에 조각 케이크 가게로 가서 케이크를 샀다. 책 고르는 데에 1분만 시간을 덜 썼으면 타르트를 살 수 있었을 텐데...



양손에 바리바리 짐을 들고 카페를 가면서 오늘 일진이 좀 사납네 하면서도 "아니야... 조각 케이크가 타르트보다 쌌으니까 오히려 나한테 이득이야..." 이렇게 자기 위안을 했다.


마지막 근무가 시작되고 몇 주만에 울려 퍼지는 배민 알림. 마지막 날이라고 배민이 들어왔구나 싶었다.


근데 어라라? 메뉴에서 뺀 디저트랑 음료만 주문이 들어왔다. 사장님이 가게 메뉴판에서는 뺐는데 배민 메뉴판에서 빼는 걸 잊으셨나 보다.



같이 일하는 직원은 만드는 법을 모르고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어찌어찌 재료를 찾아서 만들었다. 평소보다 재료를 가득 넣었으니까 맛은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배달기사님한테 음식을 건네주고 바로 배민 메뉴에서 뺐다.



같이 일하는 직원분이 내가 뭐 할 때마다 "마지막 커피네...". "네가 만든 마지막 쿠키네..." "네가 하는 마지막 설거지네..."라고 아련미 줄줄 흐르는 멘트를 끊임없이 날려서 웃겼다. 내가 무슨 이민 가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



정해진 근무가 끝나고 사장님 사무실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카카오 택시를 불렀는데 2분 만에 도착한다는 기사님은 10분이 지나서 도착했다. 심지어 네비가 고장 나서 뺑뺑 돌아서 겨우 도착했다. 그 와중에 내가 길 알려드린다고 앞으로 몸을 기울이다가 커피를 바지에 쏟았다. 다행인 건 양이 많지는 않아서 시트는 젖지 않았다... 대신 내 청바지가 기분 나쁘게 축축했지만...



사무실에서 사장님을 만나고 무슨 선물 교환식도 아니고 나는 사장님에게, 사장님은 나에게 준비한 선물을 서로 건넸다. 이번 연도 들어서 가장 어색한 순간이었다. 짧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새로 뽑은 직원들 이야기도 좀 하고 나중을 기약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택시를 탔는데 가던 중에 우산을 사장님 사무실에 두고 나온 게 생각났다(제기랄). 하지만 피로한 육신은 되돌아가기를 거부했고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이번에 탄 택시의 기사님은 아침에 백미러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다고 내게 억울함을 표출했다. 계속 호응해주다가 어떤 식으로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가방에 있는 비타민 드링크를 꺼내 드리려고 손에 쥐고 있었다. 언제 드릴까 계속 기회를 엿봤는데 기사님한테는 그 모습이 자기가 이런 얘기 해서 내 기분이 나빠졌다고 생각하셨나 보다(왜 그렇게 느끼셨는지는 모르겠다. 내 호응의 강도가 약했던 걸까?) 내릴 때 기사님은 나에게 "내가 괜한 소리 해서 기분 안 좋아진 것 같네요. 미안해요."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비타민 드링크를 드리면서 기분 나쁘지 않았다고 "힘든 일 많으셨지만 그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고 내렸다.



집에 도착해서 사장님이 주신 편지도 읽고 선물도 뜯어봤다. 누가 봐도 고민 많이 한 선물 같았다. 내 이름이 각인된 만년필. 작가가 되고 싶다는 내 말을 기억하셨던 것 같다. 그 선물을 받고 아침에 부랴부랴 선물을 샀던 내가 부끄러웠다. 신경을 조금만 더 쓸걸...



크로와상 생지로 만든 시나몬 쿠키? 빵?



알바하는 동안 좋은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없지는 않았는데 전반적으로 일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좋음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만들고 싶었던 쿠키들도 다 구워봤고 손님 없는 날에는 테라스에서 책도 읽을 수 있었고. 내가 주인인 것 마냥 하고 싶은 건 다해봤으니까.




물론 러시 타임에 찾아오는 단체주문은 내 손목 관절을 앗아갔지만. 가끔 혼자 와서 20잔 넘게 사가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럴 때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어봤다. ㅋㅋ (잘못 들은 게 아니라 외면하고 싶었던 걸까?)

일하면서 손에 상처는 왜이렇게 많이 생기던지. 제빵까지 해서 그런지 작은 화상은 늘 달고 살았다.


일하면서 나는 친하게 지내는 손님이 없었다. 내가 아는 척하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단골손님들은 그냥 주문할 때 특이점을 기억하는 정도? 쿠폰 도장을 늘 영수증에 찍어가시는 분, 샷 하나만 넣으시는 분 같은? 그리고 어디서 들었는데 너무 친한 척하면 가기 꺼려진다고 했던 것도 생각나서.



그래서 내가 그만둔다고 해도 섭섭해할 손님은 없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일하는 직원분이 어떤 손님이 나를 찾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직원은 오늘 안 나와요~"했더니  그럼 나중에 오겠다고 하고 가셨다는데... 그 말 듣고 "흐응?" 하며 놀랐다. 내 커피를  그토록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보통 감이라도 오겠지만 정말 나는 그분이 여잔지 남잔지도 모르겠다ㅋㅋ. (누군지는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손님.)




살면서 다시 카페 일을 할 일이 올까?



나중에 나이 들고 좀 여유가 있으면 한가한 카페를 해보고 싶다. 글 쓰면서 간간히 오는 손님들한테 커피를 내려드리고. 너무 판타지인가? ㅋㅋㅋ



아무튼 내 10개월 카페 알바의 마지막 장은 사장님의 번영을 빌어주며 막을 내려야겠다.



"평범한 날이지만 예기치 못한 행운들이 찾아오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10달 동안 꾀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 커피몬 지서도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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