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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May 23. 2021

나한테도 기회를 줘야지

단편소설

명준은 한강을 산책하다가 문득 높은 곳에서 야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영동대교로 올라갔다. 봄이라고 해도 저녁이 되면 서늘해져서인지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자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벅터벅 대교 끝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간쯤 명준은 멈춰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이 드문 새벽이라 다리 위에는 간간히 지나가는 차들만 있었다. 서울답지 않는 적막함이었다.


이제 명준은 난간에 기댄 채 건물들이 뿜어내는 빛을 바라보았다. 강물에 비친 빛들은 흐릿했지만 화려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볼수록 빛의 파장은 더욱 커져갔다. 강렬한 빛들에 명준은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마치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느껴지는 감각들이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이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명준은 이제 시선을 돌려 발밑 바로 아래 흘러가는 강물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밤이라서 강물은 푸른색도 갈색도 아닌 진한 남색을 뗬다. 계속 반복되는 출렁임에 명준은 강물이 마치 젤리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명준이 강으로 뛰어든다고 해도 통하고 튀어 오를 것만 같았다. 한참을 일렁임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왜? 죽으려고요?”


갑작스러운 남자의 말에 명준은 주춤거리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요. 그냥 산책 나온 거예요.”


명준의 말에 남자는 ‘흠 그렇구나’ 하듯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명준처럼 난간에 몸을 기대었다.


“대학생 때 서울로 와서 여기 자주 왔어요. 야경이 너무 보고 싶은데 난 반지하에 살았었거든요. 그래서 여기 와서 맥주 한 캔 들고 저기 남산타워 보이죠? 저거 보다가 집에 들어갔어요. 펜트하우스가 따로 있나. 이런 게 진짜 펜트하우스지. 안 그래요?”


남자는 손에 든 캔 맥주 하나를 명준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건네받은 캔 맥주를 손에 들고 명준은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불쑥 찾아온 말동무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마냥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제 남자와 명준은 캔 맥주를 홀짝이며 같은 자세로 난간에 서 있었다.


“그쪽은 본가가 서울이에요?”


남자가 명준을 흘깃 보며 물었다.


“아니요. 저도 대학 때문에 왔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그냥 직장 다니고 있어요.”


“서울살이 쉽지 않죠? 난 처음에 되게 힘들었는데. 그냥 너무 외롭고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무섭기도 하고. 근데 그냥 할 일 하고 시간 좀 지나고 나니까 그냥 먹고살고 있더라고요. 그때는 먹고살 걱정만 안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시기가 와보니까 좀 허탈해요. 그냥 이렇게 회사 다니다가 죽는 건가라고 생각하면 허무하고.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남자는 말을 마치고 빙그레 웃었다.


남자의 말을 듣고 명준은 다시 요동치는 물줄기를 바라보다 입을 뗐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삶이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다 까지는 아닌데. 가끔씩 그만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내 인생도 동영상처럼 멈춤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금방 열정이 식고. 열심히 하다가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배불러서 그런 것 같아요. 배불러서. 20대 때는 진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급해서 다른 생각할 틈이 없었거든요.”


“뭘 배가 불러요. 지금은 그냥 내 마음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 거지.”


“가끔 우울하면 전 우울한 제 자신이 이해가 가질 않아요. 먹고살만하고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씩 연락하는 친구도 있고 가족들이랑도 큰 문제가 없는데 왜 우울하지? 하면서요. 보통 우울증에 힘들어하시는 분들 찾아보면 어릴 때 부모의 외도, 학대, 학교폭력, 연이은 실패들 막 이런 큰일? 큰 사건들? 때문에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전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우울’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게 실례인 것 같아요. 엄살 부리는 것 같고. 그래서 도무지 제 우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서 답답해요.”


“왜 우울하면 안 되는데요?” 남자는 의아한 듯 물었다.


“전... 우울할 이유가 없거든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보통 우울한...”


명준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말했다.


“그거랑 상관없어요. 우울도 그냥 기쁨, 슬픔 이런 것처럼 하나의 감정이니까. 누구나 느끼는 거잖아요. 그리고 ‘나는 우울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우울하다고 느끼면 내가 잘못된 것 같고 어디 고장 난 것 같잖아요. 그니까 우울하면 ‘아 내가 오늘 우울하구나! 그렇군! 오늘 난 우울하다!’ 하고 그냥 그 감정을 받아들여요. 우울함이 무슨 죄도 아니고.”


남자는 난간에서 팔을 떼고 바닥에 털썩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자잘한 일들한테 상처 받는 게 얼마나 치명상인데요. 알죠? 종이에 베이는 거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엄청 쓰라리잖아요. 칼로 베여도 종이에 베여도 아픈 건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아프다고 쓰라리다고 소리 내서 울어도 돼요.”


명준은 자연스럽게 남자를 따라 앉았다.


“그렇네요. 제가 그 감정을 너무 금기시했나 봐요. 나도 우울해도 되는데.”


명준은 잠깐 뜸을 들이다 남자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울함이 계속 지속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냥 받아들이면 언젠가는 없어질까요?”   


“흐음. 사실 나는 우울함을 없애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우울증 약 먹고 갑자기 시궁창 같던 인생이 무지개 빛으로 변하고 여기저기서 막 유니콘이 사방 군데 뛰어다니면 그건 약이 아니라 환각제잖아요. 만약 약 먹고 무지개가 보인다 싶으면 그 의사 바로 신고해야 돼요.”


남자의 진지한 눈빛에 명준은 웃음을 터트렸다. 남자는 그런 명준을 보더니 명준을 따라 낄낄 웃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봤다.


“그냥 우울해도 사는 거예요. 아무 목표 없이 그냥 배고프니깐 밥 먹고 졸리니까 자고 눈 떴으니까 일어나고. 목표 없어도 돼요 그냥 사는 거지. 인생 특별할 거 없어요. 요 강물처럼 그냥 출렁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버티다 보면 어떤 날은 우울의 존재감은 찾아볼 수 없을 거고 또 어떤 날은 기쁨이 더 클 수도 있고 아니면 분노로 우울은 생각도 안 날 수 있잖아요. 난 가끔 바람이 불 때. 뭔가 상쾌한? 바람이 불 때. 살아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별거 아닌 이유죠? 그러니까 너무 몸에 힘주지 말고 그냥 편하게 있어요.” 


남자의 말에 명준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살짝 떨구고 말했다.


“그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겠네요.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우울이 생각나지 않는 날이 올 때까지를.”


남자는 그런 명준을 지긋이 바라봤다.


“회사에서 직급이 뭐예요.”


“대리예요. 이제 2년 차.”


명준은 남자가 갑자기 왜 자신의 직급을 물어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순순히 답을 했다.


“그럼 밑에 부하직원 있겠네요. 직원이 실수하면 바로 잘라요?”


“예? 아뇨. 너무 큰 뭐 감당할 수 없는 실수가 아니면 회사에서 단칼에 자르지는 않죠. 그냥 다음에 더 주의하라고 하고 그러고 넘어가겠죠? 아니면 경위서를 쓴다던가...”


명준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사적인 일도 아니고 공적인 일인데도 ‘그냥 다음에는 실수하지 마세요~’ 하고 넘어가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 아닌가? 바로 잘라버리고 무급으로 한 3개월 일 시키고.”


남자의 진지한 어투에 명준은 이 사람이 진심인지 아니면 농담을 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네에? 뭘 그렇게까지 해요.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죠. 다음부터 잘하면 되는 거죠”


명준은 장난스레 눈을 찌푸린 채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명준의 대답에 만족한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요. 사람은 실수하면서 살아요. 실수해도 기회를 새로 받고 그러면서 사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한테는 관대하면서 스스로한테는 엄격하게 굴어요. 다른 사람이 실수하면 ‘다음에 더 신경 쓰면 돼.’하면서 자기가 실수한 거는 엄청 야박하게 굴더라고요. 우울해서 술 마시고. 포기해 버리고. 자기한테 상처 주고. 난 사람들이 스스로한테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울함도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우울하고 싶어서 우울한 사람은 없잖아요. 우울한 나라는 사람이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그렇게 모질게 굴어요. 남한테 그렇듯 우울한 자기 자신한테도 기회를 줘야죠.”


남자는 말을 마치고 ‘읏차’하는 짧은 기합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그리고는 명준을 지나쳐 대교 끝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명준아 너한테도 기회를 줘”


명준은 깜짝 놀라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명준은 남자가 사라진 대교의 텅 빈 끝을 멍하니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먹다 남은 맥주 캔을 한 손에 쥐고 자신이 걸어 올라왔던 그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명준이 걸을 때마다 맥주 캔 안에서는 출렁이는 물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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