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사과를 깎는 여자 이야기

븐위기미인: 백합 이야기

by 이지원입니다

◎ 훔쳐보는 법

분위기미인의 분위기는 겉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녀의 내면에서 흘러나옵니다. 이 여자의 일기장을 훔쳐본다는 마음으로 읽으세요.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보다, 그전에 무엇을 느꼈는지를 따라가세요. 그 생각의 결이 분위기의 뿌리입니다.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분위기가 당신 안에 스며듭니다.



매일 아침 사과를 깎는 여자 이야기


여자는 사과를 좋아했다. 정확히는 '사과 깎기'를 좋아했다. 사각사각 상쾌한 소리가 나는 것이 좋았고, 얇은 껍질이 다소곳이 쌓인 모양도 좋았고, 아삭한 사과를 베어 무는 사람들이 '찡긋하며 건네는 눈짓'도 좋았다. 봄에는 아오리, 여름에는 쓰가루, 가을에는 홍옥, 겨울에는 후지. 여자는 계절마다 다른 사과를 깎았다. 그것은 여자에게 아침을 여는 방식이었다. '주말 어떻게 보내셨어요?' 같은 말 대신 건네는 인사였다.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됐다. 사과 한 조각 그리고 찡긋,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정확히는 '사과 깎기'를 좋아했다


수습세무사*로 일할 때였다. 출근한 지 세 달하고 열흘쯤 지났을 때, 창가 자리 언니가 여자 책상 앞에 멈춰 섰다. 여자는 사과를 깎고 있었다. 천천히, 한 호흡씩. 칼날이 사과를 따라 돌 때마다 얇은 껍질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언니는 한참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시계를 봤다. 9시 25분 — 5분 뒤면 여자가 일어나서 손바닥만한 접시 열두 개를 들고 한 바퀴 돌 시간이었다.

— 사과 깎는 거, 좋아해?

여자의 손이 멈췄다.

언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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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주)지태주 창업 - 2015년 읽으면 살 빠지는 이상한 책 출간 - 2016년 지태주 어플 출시 - 2021 여자가 봐도 예쁜 여자들 출간 -2022 분위기상점 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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