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

기분의 안녕

by 이지원입니다

@예쁜 카페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이지원 대표님의 사연을 듣고 싶은 대학생입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신문 방송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사이버 테러의 심각성을 알리고 싶댔다. 그리고 인터뷰 대상자가 되어 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문체가 귀여워서 마음으로는 오케이를 했지만 나는 요청에 신중한 편이므로, 며칠 밤을 묵은 후에 하겠다고 답장을 썼다. 나는 악플로 심하게 고생을 한 경험이 있으니 적격은 적격일 터였다.


학생이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 ― "대표님은 자존감다이어트 어플 서비스를 운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실제로 자존감이 떨어진 분들이 대표님의 영상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댓글도 많아요. 대표님의 자존감에 대한 철학을 독자님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과분하고 공손한 질문이었다. 나는 답변했다. ― "보통 자존감이 '높다 낮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죠. 제 생각에 자존감은 '건강하다 허약하다'로 쓰이는 게 좀 더 적절하지 않나 해요." 학생이 부연설명을 원한다는 듯 작게 숨죽이는 소리를 냈다. 나는 이어 말했다. "자존감이 항상, 매우, 높은 사람이 있을까요?" 어깨까지 으쓱하며 할리우드 액션을 취했다. "아마 없을 겁니다." 확신에 차서 자문자답했다.



다시 말을 이었다. "누구나 외부 자극에 리듬을 타면서 끊임없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겠죠. 그러니 높으냐 낮으냐를 재기보다 건강하냐 허약하냐를 살펴서, 아프면 회복하도록 돌보아 주어어야 해요. 몸에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감기 걸리면 좋은 음식과 물을 챙겨 먹고 병원도 가고 쉬어주는 것처럼요." 잘 정리했어, 나는 내 정리가 만족스러워 잠시 우쭐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질문을 기다리며 빙글빙글 싱겁게 웃었다.



1시간 후, 어처구니없는 걸 발견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 회사 어플을 열었는데 사용설명서 페이지에 자존감이 높은 어쩌고 저쩌고, 자존감이 낮은 어쩌니 저쩌니하는 표현을 딱 써 놓은 것이다. 그 글은 팀원이 아니라 내가 쓴 거였다(자존감 앞에 높고 낮음을 쓰는 거 아니라며? 왜 그랬어). 나는 부끄러운 심정으로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수정을 요청했다. 내일이면 어플이 업데이트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괜찮아. 기죽지 마(기 죽인 사람 아무도 없는데 혼자 괜히 찔려 가지고). 틀리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그보다는 업데이트되지 않음을 경계하자. 이건 계속 나아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야. 세심해지자는 쪽에 가까워. 남들 눈에는 티나지 않더라도 좀더 좀더 고유해지기를 게을리하지 말자는 거지. 최신 버전으로 오늘을 살자. 어플도 나도"


- 2019.12



당장 쓸모는 없지만 언젠가 쓰임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기록해두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그걸 기분 전환 용도로 쓰곤 했습니다. 「기분의 안녕」은 그곳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단대표 이지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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