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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Nov 16. 2022

국화꽃 한 송이의 무게감, 트라우마 그리고 엄마

이제야 써 보는 그날의 이야기


쌓여 있는 하얀 국화꽃마저 가슴을 짓누른다.


2022년 10월 29일 그날 , 11시쯤에 우연히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윈 코스프레 중인가 했다. 자세히 보니 실제 상황이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무섭고 떨렸다.

딸들에게 톡을 했다. "모두 집이지?"
큰딸은 "ㅇㅇ", 작은 딸은 톡을 안 봤다. 전화를 했다.
신촌, 광화문 근처가 딸의 구역(?)인 걸 알면서도 전화를 안 받는 2~3분,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았다.
자다 깨서 귀찮은 듯이 "" 이라며 톡을 남겼다. '집', 그 한 글자에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딸들은 알지 못할 지옥과 천국을 오간 엄마의 찰나의 시간이었다.

내 딸 또래들의 아까운 꽃들이 수없이 였다.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뉴스를 보는 것도 힘에 부쳤다.


사고 현장에 추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저마다 하얀 국화꽃을 놓기 시작했고, 그 꽃들은 방문하는 사람들 수만큼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쌓인 국화꽃이 숨을 못 쉬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얼른 가서 그 꽃들을 한 송이씩 펼쳐 주고 싶었다.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숨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가벼운 꽃잎 하나의 무게도, 작은 꽃 한 송이의 부피도 그들에게는 무겁고 크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옴짝달싹 못하고 선 채로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그들을 티브이에서 봤기 때문이었고, 안타까운 사연들을 기사로 읽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어린 시절의 작은 사고로 트리우마를 경험해 봤던 나는 더 이상 이태원 관련 뉴스는 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음 깊이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그곳은 꽃잎 한 장의 무게도 느끼지 못하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트라우마의 경험


한동안은 바람소리, 발자국 소리, 오토바이 소리가 뒤에서 들리는 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몸은 굳어 버리고 심장은 튀어나올 듯이 쿵쾅대었다. 뒤를 돌아봐야 했고, 확인을 하고 나서야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세기는 차츰 약해졌지만 근 10년 이상은 나를 따라다닌 트라우마였다.


수혈을 받고, 몇 바늘 꿰매고 바로 퇴원을 한 작은 사고였지만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본 엄마의 새하얗게 질린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었다. 곧 기절할 것 같았던 엄마 모습이 내 고통보다 더 크게 느껴져서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되레 내가 엄마를 진정시켜야만 했었다. 이후로 사고 때와 비슷한 상황만 되면 엄마의 그 얼굴이 떠오르고 숨이 잘 안 쉬어졌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간 일로 엄마는 왜 그렇게 죽을 것처럼 그랬었는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나는 내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작은딸과 연락이 안 닿은 그 몇 분이 나도 죽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딸은 모른다. 딸이었던 내가 몰랐던 것처럼.


인도에서 살게 되었고, 혼자서 길을 걷는 일이 거의 없게 된 환경에서 10년 넘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트라우마가 극복되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나는 트라우마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정신 바짝 차리고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것을 안다.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었는데 큰 사고가 아니란 이유로 방치했던 나 자신에게 이제 와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번 사고로 트라우마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들이 빠르게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하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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