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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Feb 02. 2023

'브런치'와 '블로그' 사이에서 나는 왜 머뭇거리나?



오늘도 나는 블로그냐, 브런치냐를 두고 잠시 고민을 한다. 블로그를 여는 마음은 가볍고 편한데, 브런치를 여는 마음은 다소 무겁게 다가온다.


디지털카메라가 생기고 나서 사진 찍는 일은 간편함과 함께 재미있는 일이 되었다. 그 사진을 보관하려는 목적으로 컴퓨터에 사진을 올리고 간단한 글을 적기 시작했다.


큰딸 초등 3학년 겨울방학의 어느 날, "엄마도 블로그 해 볼래? 내가 만들어 줄까?" 혼자서 뚱뚱한 컴퓨터를 끌어안고 재미있게 놀고 있길래 호기심을 보였더니 딸이 내게 한 말이었다.

그 얘기로부터 시작된 나는 따져보니 벌써 17년 차 블로거이다.


가족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인도로 이사를 가면서 인도 생활과 인도 여행을 기록했고, 세계 여행을 저장했고, 맛집도 공유했다. 귀국 후에는 한국에서의 일상, 내 인생 최초의 덕질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감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글로 옮겨 두는 오래된 공개 일기장인   블로그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 되었다.


형식도 없고, 제약도 없다. 거짓 정보만 아니면 어떤 글이건 개의치 않아도 된다. 글을 쓰고 싶으면 내 블로그를 찾으면 다.

사진 찍기를 즐기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블로그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 되어 주었다. 내 집 현관문을 열면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지는 그런 기분이 드곳이 내 로그이다.








귀국 후에 우연히 '네이버 브런치'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소재, 여러 장르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매거진', '브런치북', 뭐가 뭔지는 몰랐지만 나의 인도 생활기와 인도 여행기를 형식에 맞게 제대로 정리해서 글을 써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인도에 첫발을 내디디던 그날의 이야기를 블로그 기록을 참고하면서 써 내려갔다.


그런데 브런치는 아무나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야 했고, 심사에 합격을 해야만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작가들의 이력을 보고 났더니 내가 도전할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쉽게 포기를 했고, 내 첫 글은 서랍 문이 꽉 닫힌 채로 작가 서랍에 갇히고 말았다. 이후로 브런치는 잊고 있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무슨 이유에서 인지 브런치 앱에 손이 간 날이 있었다. 첫 화면에 방송인 전현무가 쓴 글이 소개되어 있었다. 가볍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짧은 에세이였다.

'내 글도 심사나 받아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1년 동안 서랍 속에서 숨도 못 쉬고 있던 글을 꺼내기에 이르렀다. 작가 신청을 했다. 그 글로 한 번만에 '브런치 작가'에 합격을 해버렸다. 1년 동안 가둬 두었던 내 글에게  너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여러 번 떨어졌다는 이들의 얘기가 보여서 내 합격이 의아했지만, 많은 작가들의 화려한 이력 앞에 25년 전업주부인 내 이력은 초라해 보였지만 한 번만에 합격을 한 자부심은 열심히 글을 써보자는 다짐을 안겨 주었다.


'열심히 글을 써보리라'했던 처음의 그 마음은 너무 길게 쓴 내 인도 여행기가 요건에 맞지 않아서 브런치북 발행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좌절을 하게 만들었다. 미리 알아보지 않고 글을 쓴 나를 탓하게 되었고, '브런치북'이 아닌 '매거진'에 있는 내 인도 여행기를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 이유로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쓸 동기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 


만만한 곳이 블로그이다. 편한 그곳이 . 내 일상도 가볍게, 맛집 소개도 부담 없이, 덕질이야기도 즐겁게 쓰고 있다.

비번을 누르고 마음대로 들어가도 되는 내 집이다.


따지고 보면 글이란 것이 내가 쓰고 싶은 곳에,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 그만인데 블로그만 매일 들락거리는 내 마음 한구석에 '블로거'보다 '작가'라고 불리는 곳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


브런치도 분명 내 공간인데 비번을 자꾸 잊어버려서 현관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 가끔 가는 세컨하우스쯤 되는 것 같다. 관리가 힘들어서 괜히 장만했나 싶은 마음은 있지만 세컨하우스는 마음이 동할 때 가도 되는 또 다른 내 집이다. 갖고 싶은 동경의 집이다.



6개월 전에 쓴 브런치 글이 오늘 아침에 조회수 1000을 돌파했다는 알림을 받았다. 어떤 계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녀간 흔적도 없지만, 내 글이 누군가에 의해서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또 글을 쓰게 되는 동기부여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오늘은 블로그가 아닌 브런치를 찾았다. 불편하지만 새로운 환경의 세컨하우스 비번을 생각해 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던 나의 '첫 글' ️

https://brunch.co.kr/@leejprett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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