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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Jan 26. 2023

눈을 본 적이 있나요?

사르르 사르르 내리는 눈이 소복소복 하얗게 쌓이고 있다. 밤사이 제법 내린 눈이 천지를 하얗게 덮었다. 창밖 동네가 몽환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창틀을 사이에 두고 이쪽은 현실, 저쪽은 동화이다.


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과학시간에 배워서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하늘에서 선녀가 뿌리는 마법이라는 쪽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이 사실이다.

태어나서부터 보고 자랐고, 겨울에는 당연하게 보게 되는 눈이지만 신기하고 신비로운 생각은 한결같다. '하늘에서 어떻게 이런 예쁜 것이 떨어질까?' 과학적 원리는 알지만 믿고 싶지는 않는 마음이 된다.


인도에 살 때 우리 집 운전기사가 뜬금없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Madam! Have you ever seen snow?"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꿈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눈을 본 적이 있냐고 묻는 그 아이의 눈빛은 본 적이 있다고 마담이 말해주기를 바라는 기대로 반짝였다.


"많이 봤어. 한국은 겨울이 있어서 그 계절에는 항상 눈이 오곤 해"

"영상에서만 봤는데 하늘에서 하얀색 물체가 떨어지는 게 상상이 안 돼요. 눈을 본 마담은 행운이에요" 대충 이런 대화를 나눈 것 같다. '겨울'이라는 단어도 와닿지 않는 도시에 사는 아이에게 하물며 '눈'은 오죽할까 싶었다. 눈을 본 나는 그 아이의 시선으로는 행운아였다.


내가 살던 곳은 남인도의 어느 도시였다. 일 년 내내 한여름인 도시였다. 땅덩어리가 큰 인도는 북쪽에는 겨울이 있어서 매스컴에서 간혹 눈 내린 도시 풍경을 보게 된다. 그날, 우리 기사가 인도 다른 도시에 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티브이로 봤다고 했다. 그래서 눈이 궁금해졌고,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이었다.


'비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하얀색이고 차갑고 얼음보다 가볍다. 손으로 단단하게 뭉치면 얼음처럼 된다' 생각나는 대로 설명을 했지만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아이는 내 설명이 잘 와닿지도 않을뿐더러 하얀색 물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자체가 신기하고 이상하다고 했다.


사실 그 무렵에 나도 눈을 본 지가 5~6년은 된 때였다. 딸들 여름방학 때만 한국에 다니러 갔기 때문에 겨울의 한국을 본 지가 오래되었었다. 얘기를 하면서 나에게도 눈은 상상의 물체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래도 나는 본 적이 있는, 여러 번 본 눈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가져보지 못하는 경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날이었다. '눈'이 그런 경험의 하나라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온 날이었다. 내 의지와 노력이 없어도 겨울만 되면 보게 되는 그 흔한 '눈'이 아닌가 말이다.


잠에서 깬 새벽, 젖힌 커튼 너머로 보인 하얀 세상은 누군가에게는 꿈의 세상이었다.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나는 그저 얻은 그 세상은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특별한 세상이었다.


"마담은 눈을 본 적이 있나요?" "마담은 행운이에요!" 죤슨의 목소리가 들리는 아침이다. 미안하고 감사하게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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