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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코끼리 이정아 May 02. 2022

인도의 프랑스 마을 '폰디체리', 그 마지막 기억


 귀국 이삿짐은 모두 항구로 보냈다. 인도를 떠난다는 감을 하며 짐이 한국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계획대로 인도 여행길에 올랐다. 배에 실려서 바다 위를 한 달 동안 떠 갈 우리 짐들과 자동차와 비행기와 두 발로 움직일 우리들은 다른 곳을 향했다.


 우리의 첫 여행지는 인도의 땅끝마을 깐야꾸마리(kanyakumari)였다.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해서 힌두교에서도 유명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매일매일 수천수만 명의 인도인들이 찾는 도시라고 한다. 

 

 인도에서 11년 동안 살았던 우리도 그 거대한 나라의 남쪽 맨 끝에 가 보기로 했다. 7년간 우리 집 차를 운전했던 존슨과 동행했다. 같이 여행 다니기 좋아하는 그 아이와의 인도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우리가 살았던 첸나이에서 깐얀꾸마리까지는 차로 10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다. 그래서 가는 길에는 폰디체리(pontichery)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두라이(madurai)에서 1박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많이 가 봐서 좋아진 프랑스 문화의 폰디체리였고, 한 번도 안 가봐서 궁금한 힌두 템플의 도시 마두라이였다.





몇년 째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방치 된 우리동네 또라이바깜(Thoraibakkam)의 상가 건물 앞을 지났다. 비가 제법 내렸지만 다행히 곧 그쳤다.


 2019년 12월 4일 이른 아침, 여행이 시작되었다. 우기 끝자락,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언제나처럼 출발 전 기도를 하는 크리스천 존슨이었다. 그 기도 덕분인지 차를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비는 그쳤다. 존슨은 그렇게 믿었다.


 인도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그 종교만큼 다양한 문화 속에서 살게 되는 나라이다. 힌두교만 있을 것 같지만 슬람교, 기독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등등 많은 종교가 있다. 각 종교마다 기념일도 달라서 휴일도 많은 나라이다. 기독교인 존슨은 늘 그렇게 장거리 운전 전에 안전을 위한 기도를 했다.


ECR의 대표적인 뱅갈만 해안가 풍경


 뱅갈 해를 따라 길게 뻗은 ECR(East Coast Road)달렸다. 인도 첸나이에 산 10여 년 동안 참 많이도 다녔던 도로였다. 2009년 인도 생활 처음에는 도로 상태가 엉망이었었다. 통행료도 내는 분명 고속도로인데 중앙분리선을 넘어서 마주 달리는 차들을 피해서 곡예를 하듯이 차를 달려야 했다. 소도 다니고, 염소도 다니고, 오토바이도 다니고, 무단횡단도 서슴지 않는 위험천만 고속도로였다. 도로가 패인 곳도 수없이 많았다. 그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을 하면 손잡이를 움켜쥔 팔이 항상 욱신거리곤 했다.


 정확한 년도는 기억에 없지만 몇 년 후에 도로도 확장되었고, 중앙분리대도 생겼고, 아스팔트도 새로 깔렸다. 폰티체리까지 5시간도 더 걸리던 거리였는데 이후로는 2~3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인도를 떠나는 마지막에 우리는 잘 닦인 ECR 도로를 달려서 우리가 좋아하는 도시, 폰티체리로 향했다.


쉐라톤그랜드의 조식


 첸나이 한인 중에서 우연히 가 제일 먼저 알게 되어서 그 당시 핫한 장소가 되었던 바닷가의 쉐라톤 그랜드에서 아침을 먹었다. 인도에 사는 동안 우리가 누린 호사라면 호텔 음식을 쉽게 자주 먹은 일이었다. 우리가 좋아한 그곳에서의 마지막 조식을 즐겼다.


폰티체리 내려가는 도로변 풍경이다. 하늘을 덮은 가로수와 염전은 폰디체리가 가까웠음을 알려준다.


 다시 달렸다. 눈에 익은 가로수를 지나고, 염전도 지났다. 이내 폰디체리 시내로 들어섰다. 14~15세기 프랑스 식민지였던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인들도 제법 살고 프랑스 관광객들도 많이 보인다. 하나의 (city)가 하나의 (state)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인근 도시와는 문화도, 법도 다른 도시이다.


 술 구하기가 까다로웠고 비쌌던 첸나이와는 달리 주세가 싸고 술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포도주나 맥주를 마시러 그 먼길을 다녔었다. 첸나이에는 잘 없던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으러 다녔었다. 첸나이에 술집도 제법 생기고 소고기 스테이크가 맛있는 집도 생겼지만 바람도 쐴 겸 간간이 다니던 도시였다. 그래서 익숙해졌고, 익숙해서 정이 폰티체리였다.


오르빌의 황금 사원


 공동체 마을인 오르빌(Auroville)이 있는 도시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같은 사상을 가지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특이한 동네여서 오르빌 마을 구경도 재미있었다. 황금사원도 특이했고, 마을에서 생산되는 수공예 도자기핸드메이드 패브릭 품 쇼핑도 재미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프랑스인들이 심심찮게 보이 곳이다.


 첸나이에 비해 작은 도시, 자유로운 분위기의 그곳은 편하게 밤길도 걸어 다녔다. 힌두 문화가 대세인 뭔가 갑갑하고 보수적인 첸나이를 벗어나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으면 찾던 곳이었다. 신도심 '화이트 타운'이 그랬다.




폰티체리 초입의 주변 풍경이다. 학교 교문과 전통복장의 인도인들


 이제 그곳도 마지막이다 싶어서 도시 초입에서부터 벌써 반가웠다. 예약해 둔 호텔에 짐을 풀었다. 낡아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알고 보니 250년이나 된 호텔이었다. 앤티크 풍의 그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닷가 마을인 폰티체리는 고급 호텔도 습하기는 매한가지여서 그 정도면 충분히 괜찮았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잤다.


250년 된 Hotel 'du parc'


 배가 고파 점심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폰티체리에 가면 자주 가는 식당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의 한 곳, 'LB2 라운지'에 들렀다. 동네 맛집을 우연히 알게 되어서 폰티체리에 갈 때마다 가던 곳이었다. 비프스테이크, 치킨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역시 맛있게 먹었다.


동네 맛집 'LB2 라운지'



 커피 마시러 찾아간 곳은 코로만델 카페(COROMANDEL CAFE)이다. 폰티체리에 당시에 새로 생긴 고급 카페였다. 커피를 마시고 카페 옆의 서점에서 책도 한 권 샀다. 여행을 다니면서 가끔 그 나라 글씨가 적힌 그림 동화책을 사곤 하는데 그곳에서는 인도 전통 민화가 그려진 색칠 공책을 샀다. 지금도 내 책꽂이에 잘 꽂혀있어서 인도 생각이 나면 가끔씩 꺼내보곤 한다. 흑백의 그림 문양이 인도 여자들이 손에 그리는 헤나 염색, 멘디(mehndi)를 연상하게 한다. 인도스러운 그 책을  때마다 그때 그 폰티체리가 떠올라서 좋다.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운 '코로만델 카페'와 북스토어


 그리고 또 걸었다. 반나절 동안의 폰디체리 여정이어서 머무는 동안에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기로 했다. 아쉬움이 남지 않게 폰티체리를 눈에 많이 담고 싶었고 그래서 차는 두고 걷기를 선택했다. 주택가 골목을 걷는 그 기분 참 좋았다. 첸나이에서는 하기 힘든 일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키가 큰 초록 나무들 사이의 원색 페인트 칠이 된 집 구경도, 예쁜 문 구경도 좋았다. 사람들 사는 모습 구경도 좋았다.


자전거릭샤 투어 중인 프랑스 관광객
화이트타운 골목 풍경


 평소에 그림 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수준이 첸나이와 많이 다른 폰디체리의 벽화 구경도 흥미로웠다. 골목을 걷다가 무심히 돌아본 얼룩진 벽에서 교복 입은 소녀와 눈이 마주치고, 개구쟁이 소년과도 마주하게 된다. 나뭇가지가 된 창틀 사이의 파랑새들도, 종이비행기에 매달려서 하늘로 떠오르는 유쾌한 남자도 만난다. 오래되어서 글씨가 사라진 이정표를 자세히 보면 강아지가 웃고 있다. 숨어있는 벽화는 폰티체리 골목을 걷는 재미를 더했다.


벽화도 수준이 높다. 폰디체리는.


 걷다 보면 박물관도 지나고, 공원도 지나고, 시청도 지난다. 그러다가 다다른 곳은 원색의 페인트 칠이 화려한, 프랑스풍의 예쁜 성당 앞이었다. 성당 건물도 화려했고, 전통 옷을 입은 인도인들도 화려했다. 화려함 속의 엄숙함이 오히려 경건함을 더했다. 기도하는 인도 크리스천들의 간절함이 보였던 그곳이 내내 잊히지가 않았다.


노트르담 성당 외관을 닮은 '더 세이크리드 핫 바실리카 성당'은 화려한 색감 덕분에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곳.


 바람을 가르며 훠이훠이 해변의 간디 동상까지 노란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의 인도 명칭)를 탔다. 마침 영화 촬영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구경하느라 모여 있었고, 우리 눈에는 그네 타는 여배우도 그 구경꾼들도 모두 배우처럼 보였다.

 

 인도 영화 산업은 봄베이의 발리우드 다음으로 타밀나두 영화가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집 주변에서도 영화 촬영 장면을 자주 봤었다. 

인도 4대 도시인 첸나이(Chennai) 시가 포함된 인도 남동쪽의 주 이름이 타밀나두(Tamilnadu) 주이다. 인도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고, 북인도와는 인종도 다른 지역이다. 사람들은 피부도 까맣고, 덜 예쁘고, 덜 잘생겼다. 배우들도 우리가 익히 인도 영화에서 보는 그런 미모는 아니다.


오토릭샤를 타고 가면서 운좋게 보게 된 영화 촬영 장면


 토릭샤에서 내려서 바닷가로 걸어갔다.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에 등장하는 다리 밑에도 가보고, 검은 바위가 특이한 바람 부는 '락 비치'도 걸었다. 다시는 못 올 것 같은 그곳을 터덜터덜 돌아다녔다. 여러 번 왔던 곳이지만 마지막인 그날은 처음으로 덥지가 않았다. 도시는 언제가 안 더울까 싶을 정도로 갈 때마다 너무 더워서 힘이 들었는데 그 마지막 날은 무척이나 시원했다. 우리가 좋아한 폰티체리는 시원한 바람으로 굿바이 인사를 해 주었다.


검은 바위가 해변에 가득한 '락비치'이다


 다시 걸어서 호텔에 돌아왔다. 존슨이 길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끼리 구경을 하라고 했다. 호텔 앞 골목이 이상하게 사람들로 붐빈다고 생각했는데 골목 안에 힌두 템플이 있었다. 화이트 타운 쪽은 프랑스 문화가 많고, 성당도 많은 곳이지만 그곳도 인도이다. 힌두교인도 당연히 많은 곳이다.

 

 템플 입구에 큰 코끼리가 있었는데 쇠사슬에 다리가 묶인 코끼리가 돈을 받으면 뒤에 앉은 남자가 회초리로 때렸다. 그러면 코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코끼리 신이라고 했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학대받는 불쌍한 코끼리였다. 마음이 안 좋아서 템플 구경은 그만두고 입구에서 나와버렸다. 우리의 마지막 인도 여행 첫날에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코끼리가 너무 불쌍했던 호텔 앞의 힌두 템플


 호텔에서 잠시 땀도 식히고, 다리도 쉬고 다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폰디체리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장소는 최대한 모두 가보자고 했었다. 폰티체리 맛집으로 유명한 호텔, 빌라 샨티(VILLA SHANTI)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날도 여전히 백인 손님으로 북적였다. 분위기 좋은 그곳에서의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 여행 첫날의 밤, 폰티체리에서마지막 밤은 더없이 좋았다.


폰티체리 맛집으로 유명한 호텔, 'VILLA SHANTI'


 호텔로 돌아오는 깜깜한 골목은 시원했고 고즈늑했다. 첸나이에서 10여 년을 살았지만 밤길을 걷는 일은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걷고 있는 밤 골목이 너무 좋았다. 첸나이에 살면서 할 수 없었던 그 일이 순간 자유로움으로 다가왔다.  한국에 돌아가면 실컷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 알 수 없는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


 그제야 너무 오래 살고 있는 답답한 첸나이를 떠나게 된 이 잘된 일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마음의 짐이 모두 내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도 나도 말은 안 했지만 분명히 같은 생각었다고 확신한다.


화이트 타운의 밤 풍경


 인도를 떠나면서 시작한 인도 여행의 첫날은 자유로웠고, 편했고, 가벼웠다. 앞으로 남은  2주간의 여행을 기대하게 했다. 남편과 처음으로 둘이서만 하는 인도 장기 여행이 더 기대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퇴직과 귀국 결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남편이었다. 여행 첫날에 벌써 무척 가벼워 보였다. 여행이 그렇게 만들었다. 겨우 여행 1일 차에 우리는 이미 여행의 목적을 달성한 기분이었.


 마음 편히 책을 읽는 남편 옆에서 나는 바로 잠이 들었고, 그날 밤엔 모처럼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이삿짐 정리와 바빴던 첸나이에서의 마지막 일정 때문만은 분명히 아니었다. 뜨거운 물 샤워가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말로는 나는 괜찮다고, 오히려 잘 되었다고, 인도에서 고생한 남편이 한국에서 편하게 살게 되어서 좋다고 했지만, 무의식 속에서의 나는 남편만큼 섭섭했모양이었다.


Hotel duparc 복층 객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그 모든 무거운 감정들은 폰티체리에 남기고, 우리는 가볍게 인도의 남쪽 땅끝 '깐얀꾸마리'로 향했다. 10시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깐얀꾸마리에서 일몰을 보려면 7시경에는 출발을 해야 했다. 아침식사가 늦은 인도의 호텔에 부탁을 해놨더니 2인분 식사를 미리 준비해주었다. 뜨거운 커피와 따뜻한 오믈렛도 있었다. 250년이나 되었다는 호텔은 친절하기도 했다.


호텔 직원이 이른 시간에 따로 조식을 준비해줬다.


 차에 올랐다. 출근하는 남자들이 식당 밖의 길에 서서 아침을 먹고 있었고, 교복 입은 학생들은 등굣길이었다. 폰티체리의 마지막 모습은 활기찬 아침 풍경이었다. 출근 시간 교통체증을 빠져나왔다. 좋은 기억의 폰티체리를 뒤로 하고, 깐얀꾸마리로 향했다.


폰디체리의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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