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소리는 가볍고 글자는 곧바르다
'ㅂ'과 'ㅣ'가 만나
속삭이듯 차분한 소리를 내며 젖은 공기를 가른다
창문(ㅂ) 너머 수직의(ㅣ) 빗방울이 의연하다
'비'는 비를 닮았고
"비"는 빗소리를 낸다
비 비
작은 물웅덩이를 성실히 채운다
비 비 비
건조한 이파리에 축축한 기척을 얹는다
비 비 비 비
창문을 연주하는 음률이 경쾌하다
봄비 여름비 가을비 겨울비
저마다의 발음이 그 계절 소리를 닮았다
"봄비"
오므린 입술 안에 가득 머금은 공기가 노랑노랑 터져 나온다
"여름비"
한입 넘치게 문 얼음을 참지 못하고 한 조각 뱉어낸다
"가을삐"
살랑살랑 억새가 간지러운 휘파람을 분다
"겨울삐"
잠자던 개구리가 눅진대는 땅속을 삐직삐직 뒤척인다
겨울 정원에 비가 내린다
겨울삐가 내린다
겨울 소리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