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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Dec 23. 2020

속으로 웃는 사나이

나는 친절한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문장 끝에 웃는 이모티콘^^을 붙이지 않는다. 이모티콘의 결과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코로나 확산으로 등교 수업이 중지되고 온라인 수업을 진행 중이다. 여기서 문제. 다음 두 보기 중 어느 쪽의 과제 제출률이 높을까요?


A: 3교시 수학 과제 올리세요.

B: 3교시 수학 과제 올리세요^^


정답은 두말할 것도 없이 A. 웃는 이모티콘을 붙이는 순간 과제 제출률이 20% 감소한다. 인간은 상대의 간을 보는 심리가 있다. 친절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내 마음대로 편하게 대처해야 해도 별 탈이 없을 거라는 본능적 판단이라도 드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사회생활에 감각이 없는 학생이라서 편향된 결과가 나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최근 집을 매매하면서 가스 차단기와 빨래 건조대 AS를 신청하였다. 물론 따스하고 다정한 음성으로 직원분께 부탁을 드렸다. 문장으로 치면 *^^*을 붙인 정도랄까. 결과는 참패. 2주가 지나도록 기사님 연락도 없고 가타부타 안내도 받지 못했다. 사람 일에는 착오가 있을 수도 있으니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 정도의 친절함을 담아 정중히 AS 요청을 재차 강조했다. 그리고는 감감무소식인 채로 열흘이 지났다. 


나는 웃는 이모티콘의 무용함에 질려 버려서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아주 지랄을 했다. 시X까지는 아니고 표준어 범위에서 한껏 쏘아주었다. 3일 만에 모든 AS 접수가 완료되었고, 기사님이 ^^ 웃는 얼굴로 말끔하게 작업을 끝마치고 가셨다. 으음, 정말이지 지랄은 가급적 안 하고 싶지만 때때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만 웃기로 결심한다. 말로든, 문장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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