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중에 출장을 내고 학교로 간다. 물론 여비부지급으로. 출장까지 내고서 학교에 모인 까닭은 오늘은 반편성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학급을 또 다른 다섯 개의 학급으로 재편성하는 일은 생각 외로 복잡하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꽤 많다. 외부인이라면 단순하게 난수 배정 프로그램을 돌리면 되지 않은가 하고 속 편하게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만일 랜덤 배정을 했다가는 다음 해의 온갖 민원과 교사들의 고충 토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반편성은 사전 작업과 사후 작업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사전 작업은 학년 교사들이 모두 모여 협의를 하기 전 담임이 우선적으로 학생의 속성을 부여하는 일을 말한다. 속성이라고 하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장 단순한 속성은 학업성취도다. 쉽게 말해서 특정 반의 학업 수준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해당 반을 맡은 선생님의 부담이 커지고, 운이 좋아 평균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급을 담당하게 된 선생님과 형평성이 맞지 않으니 밸런스를 맞춘다. 1년 간의 평가를 종합하여 아이들을 상, 중, 하, 기초학습 부진으로 분류한다. 또 다른 영역의 속성도 있다. 지도가 유달리 까다로운, 심각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을 비고란에 기재한다. 이런 학생은 함께 생활하는데 굉장한 에너지와 인내심이 필요하고 직무 스트레스 유발의 제1요인으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경우 가정의 문제, 정신적 질환, 약물치료, 전문 상담 등을 동반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복지대상 아동(가난하다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추가 프로그램 참여, 장학금 추천서 작성, 지원 사업 연결 등 실제로 업무로 여겨질 만한 일들이 동반되므로), 도움반(특수교육 대상자), 쌍둥이(부모에 따라 같은 반에 배정하기를 희망하기도 하고, 다른 반으로 찢어달라고 하기도 한다), 앙숙 및 일방적 관계(싸움 경력, 학폭 신고, 불편한 관계, 따돌림 등 여러 이유로), 기타 사유(특정 성별 교사 선호, 특정 친구와 같은 반이 아니면 학교 생활이 어려운 관계) 따위가 존재한다. 사전 작업 단계에서 비고란은 이미 갖은 속성 부여로 어지럽게 변한다.
사후 작업은 이른바 실전으로서 담임들이 모두 모인다. 담임은 포스트잇 한 장 한 장에 학생 이름을 적어 등장한다. 칠판에는 내년도 학급의 수만큼 칸이 나뉘어 있고 담임들은 사전작업의 기준에 따라 포스트잇을 붙인다. 이때 헷갈리지 않게 포스트잇 종류와 색을 구분하여 누가 어느 담임 소속인지 확실히 한다.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기에(지역에 따라서는 수백 명) 시각적 구별성은 매우 중요하다. 사전 작업을 아무리 꼼꼼하게 했다고 해도 막상 포스트잇을 모아 보면 다른 반 학생과 조합하는 과정에서 변수가 터진다.
"김태욱, 장태욱, 손태욱(이하 가명)이 같은 반에 있는데?"
"얘네 사귀다 깨져서 사이 별로예요."
"한 반에 축구부가 넷이에요. 전국대회 열리면 일주일 간 수업 펑크 난다고요."
"이 학부모님 저번에 학교 뒤집어 놓지 않았어? 특정 사안에 반응이 아주 장난 아닌데."
인사가 만사라 했던가. 반편성은 결국 사람을 조화롭게 묶어내는 일이다. 정량적인 지표로 나타나지 않는 다양한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눈을 이글거리며 칠판을 분석하고, 포스트잇을 수십 번 옮기다 보면 어느새 내년도의 윤곽이 잡힌다. 이걸 팀장 선생님이 조금 다듬고 최후 조율을 거쳐 차후년도 반편성 결과 파일이 만들어진다. 사무적인 이름과 달리 내막은 복잡하고 치열하다. 그러나 종이는 말이 없다.
당연히 교무실에 제출하는 반편성 목록에는 학생의 자세한 특성은 기재되지 않으며, 다음 해 담임 선생님도 학생 개개인의 속성을 알 수 없다. 그저 새로운 담임은 전년도 선생님들의 지혜와 배려심을 믿으며 어떠한 사전 지식도, 편견도 없이 제자가 된 뉴 페이스들을 맞이 하면 된다. 나는 내년도 우리 반 아이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오늘 나와 동료들이 고도의 집중력으로 갖은 가능성을 시뮬레이션 해 가며 반편성을 했듯, 다른 선생님들도 동일한 작업을 어렵사리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A반에 가고 싶은데? 하고 욕심이 나는 학급이 있지만, 인연은 알 수 없는 게 묘미이니 그저 운명에 맡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