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복장 관련 지침을 어겨 경고를 받았다. 공무원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간소하고 단정한 복장 착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로서 감히 카키색 폴로셔츠와 무릎까지 오는 회색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었기에(출근은 운동화로 함) 지나친 개성을 뽐냈다.
경고의 근간이 되는 공무원 복장 관련 지침은 자아분열적이다. 애매모호하다는 표현의 직접적인 예시를 찾고 싶으면 지침을 챙겨 보라. 책임회피와 두루뭉술의 극치다. 세부항목을 기술해 보겠다.
목적 1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 진작을 위해 품위유지, 공직예절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짙은 색이나 흰색 외에도 다양한 색상의 복장을 연중 자유롭고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함.
목적 2 기관 특성, 직무 성질 등을 고려하여 각 기관별로 실정에 맞게 자율적, 신축적으로 실시
여기서 목적 2가 문제다. 기관별로 실정에 맞게 자율적, 신축적으로 실시. 언뜻 보면 좋아 보이지만 목적 1에서 품위유지, 공직예절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라고 했으니까 기관장이 정하기 마음이다. 기관장님이 관대한 분이길 바랄 수 밖에.
아니,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진작한다면서 공무원들은 옷을 못 고르는 바보 등신일까 봐 권장사항도 있다. 간소하고 단정한 복장이 바로 그것인데 노타이 정장, 콤비, 니트, 남방, 칼라셔츠, 정장 바지, 면바지 등이 있다. 공문 만드는 행정기관 관료의 머릿속에는 감시, 통제, 명령밖에 없는 것 같다. 아, 거들먹거림과 특권의식도(국민들 개돼지라던 사람이 교육부 소속이다).
협조사항이라고 공문 말미에 사족을 달아 놓았다. 목적에서 쓴 말을 또 쓴다. 지나치게 개성적인 복장 착용으로 품위가 손상되거나 근무기강이 해이해진 인상을 주지 않도록 유의하란다. 바람직하지 않은 복장 예시로 슬리퍼, 반바지, 찢어진 청바지를 또 적어 두었다. 내가 지적당한 건 바로 이 예시에 걸려서이다. 도대체 과도한 건 어디까지고, 지나친 건 뭔데. 무릎까지 오는 통 넓은 반바지가 과도한 건가. 핫팬츠도 아닌데.그건 내가 곤란하다.
협조라고 해놓고 뭔 그리 잔소리가 많은지. 매년 하절기 공무원 복장 간소화를 주장하고, 경기도나 서울에서 지자체장들 반바지 입고 사진 찍고 그러는데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모르겠다. 속건성 기능성 긴바지 사려고 옷 사이트 뒤지는데 짜증 나서 헛클릭을 몇 번이나 한다. 아아~대한민국, 아아~ 대한민국. 공무원 복장 관련 지침 한 번 제대로 구리다. 2009년 발령 이후 바뀐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