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시부터 열두 시까지 쉴 새 없이 듣고 말한다. 쉬는 시간도 없다. 30분 단위로 아이들이 네 명씩 등교하고 짐 싸고, 수다 떨고, 악수하고 간다. 한 팀이 나가면 대기하고 있던 다음 팀이 들어온다. 진정한 의미의 풀타임 수업이다. 그런데 하나도 힘들지 않다. 내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갑자기 체력은 왜 이렇게 짱짱해.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져 영화 '1917'까지 끝까지 보고 왔는데 박카스를 두 병 연달아 마신 것처럼 입이 마구 돌아간다. 학생 실물을 영접하였더니 선생 유전자가 발동하기 시작한 것 같다.
선생 유전자가 '으음, 오랜만에 영업해볼까' 하면서 엉덩이를 떼기 시작하면(유전자에게 엉덩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지만) 걷잡을 수 없다. 안 하던 연극을 하고, 일본 애니 마니아에게 스고이하며 감탄사를 날리고, 주먹 인사를 하자고 덤빈다. 일반 성인 대상으로는 절대로 발현되지 않는 특수한 조건부 '하이 모드'다. 하이 모드의 나는 내가 아니며, 상상력과 놀라움이 200% 각성된 상태로 어떤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가끔 내가 어떻게 교사를 하면서 밥 먹고 사는지 사후적으로 납득할 때가 있다. 나는 가끔씩 내가 평소에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보다 더 교사처럼(교사처럼의 의미가 정확하게 규정된 건 없지만) 행동하고(내 의지와 무관하게), 낯선 열정으로 차오른다. 굶주린 소를 신선한 풀이 돋은 언덕에 풀어준 것처럼 오프라인 수업에 반응하는 나를 보면서 피부 아래 숨어있는 선생 유전자의 존재를 확인한다. 다른 재주 없는 내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분야가 하나는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