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아이가 언제부터 거기에 와 있었는지는 모른다. 오늘은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기에 교실에는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한 상태였다. 내가 한창 '2021학년도 학급 담임 및 업무분장 희망 조사서(이준수) 수정.hwp'를 작성하고 있을 때 나는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헤드폰에서는 Michael Ponti가 연주하는 차이코프스키 6 pieces for piano가 꽉 찬 음량으로 흘러나왔다. 아이를 발견한 건 내년도 희망 업무 1순위, 2순위를 무엇으로 신청할지 고민하며 스크롤을 위아래로 내리다가 모니터 좌측 상단에 거뭇거뭇한 그림자가 낀 느낌이 있어 쳐다보았을 무렵이었다.
"아, 무슨 일이야?"
나는 급히 헤드폰을 벗고, 턱에 걸쳐있던 마스크를 올렸다. 그제야 방문객의 전체적인 인상착의가 눈에 들어왔다. 스포츠머리의 남학생, 패딩 점퍼를 걸치고(거의 성인 사이즈에 가까웠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음. 의문의 소년은 상당히 체구가 좋았다. 그 아이는 앞에서 두 번째 줄에 해당하는 위치에 가만히 서서 말했다.
"제가 5학년 2반이라고 해서요."
흠,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렀다. 내가 5학년 2반 담임인데, 저 아이는 도대체 누구일까. 몇 초 후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대뇌피질 세포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차근차근 순서대로 상황을 파악해보자. 저 아이가 5학년 2반이라는 것은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보통 학생은 아무 근거도 없이 처음 보는 선생님이 있는 교실에 들어가 대기하지 않는다.
"누구한테 그런 말을 들었니?"
"저희 선생님한테요."
"몇 반 선생님?"
"4학년 2반이요."
이제야 이야기가 성립된다. 소년은 2020학년도 기준 4학년 2반 소속이며, 오늘 학교에 나와서 통지표를 받았다. 4학년 2반 담임 선생님은 3월 2일에 등교 시에 가야 할 장소를 알려 주셨다. 2021년도 기준 이 아이는 5학년 2반이 될 것이다. 4학년 2반 선생님은 아마도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하여 "OO아 5학년 2반으로 가야 해. 알았지? 5학년 2반." 하고 말씀하셨을 테다. 물론 그 말 뒤에는 3월 2일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겠지만, 소년은 어떤 사정으로 인해 그 말을 오해하고 어쩔 줄 모르는 마음에 5학년 2반으로 일단 가게 된 것이다.
소년은 여기서 또 다른 당혹감을 맛본다. 5학년 2반에 가라고 해서 왔건만 교실에 또래는 아무도 없고, 빨간 소니 헤드폰을 쓴 덩치 큰 남자 선생님은 심각한 얼굴로 자판만 두드리고 있다. 조금 있으면 안내를 해줄지도 모르니 선생님이 업무를 다 볼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소년은 소리 없이 서 있기로 한다. 그러다 슬며시 고개를 돌린 남 선생이 혼자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뜬다. 귀신을 본 것도 아닌데. 모르긴 몰라도 대충 이런 흐름이 아니었을까.
"잘 왔어. 내년에 5학년 2반, 아니 올해 3월부터 5학년 2반이 될 예정이니까 방학 끝나면 여기로 등교하면 돼."
"5학년 2반 선생님이세요?"
"으음, 지금은 맞는데. 3월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아이는 미궁의 더 깊은 곳으로 발을 디딘듯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도 모르면 어떡하나요, 하고 막막함 같은 것이 아이의 숨소리를 통해 전해졌다. 그러게, 나도 앞날을 정확히 알지 못하구나. 사실 네가 왔을 때 나는 마침 내년도 희망 학년을 쓰던 중이었거든. 1순위 5학년, 2순위 6학년, 3순위 4학년으로 낼 거야.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
"어쨌든 확실한 건 넌 5학년 2반이 맞고(시기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3월에 여기로 와야 해."
"네. 그럴게요."
아이는 처음으로 얼굴 표정을 풀었다. 다소 오해를 무릅쓰고 표현하자면, (비난의 의미를 모두 덜어내고 순수한 이미지로서) 투실투실 귀여운 고릴라를 연상케 했다. 나는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담임을 맡을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온 수고로움도 있으니 아이에게 마켓오 그래놀라 바 검은콩을 건넸다. 아이는 일반적인 반응 이상으로 크게 감격한 듯 고개를 숙였다. 검은콩 그래놀라 바는 머리숱이 적어지는 삼십 대 중후반을 대비하여 예방적 차원에서 먹는 나의 간식이다. 십 대 소년 입맛에 맞으려나 모르겠다.
적고 나니 새삼 드는 생각인데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을까.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른다. 그런데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산다. 이래도 되나, 글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