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폭설이 내렸다. 영동지방이 골고루 눈을 맞았는데, 특히 속초, 양양, 강릉 등 위쪽의 피해가 심했다. 내가 거주하는 동해시와 학교가 있는 삼척시도 하얗게 뒤덮였다. 우리 가족은 개학을 하루 앞두고 집에 콕 박혀 창밖만 바라보며 지냈다. 아내와 나에게는 학교 출근이, 두 딸에게는 유치원 등원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양에 달려있다. 눈은 애타는 사람 마음도 모르고 밤새 내렸다.
아침에도 밖은 눈부시게 하얬다. 강릉까지는 휴교령이 내려졌지만 동해시 이남으로는 정상 출근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교감선생님은 교직원 단체 채팅창에 "시간 되시는 남자 직원들께서는 조금 일찍 출근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왜 하필 남자만 인가. 잠깐 투덜거리다가 내가 좋아하는 남자 선배 교사가 씩씩하게 대답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 형 성격에 보나 마나 아주 열심히 삽질을 할 것이다. 내가 안 하겠다고 버티면 다른 남직원들이 내 몫만큼을 더 하게 된다. 마치 군대 작업처럼.
바퀴가 헛도는 눈길을 해치고, 서너 번 미끄러지며 두 아이와 아내를 내려다 주고, 학교에 도착해 아홉 시까지 눈을 치웠다. 아이들은 10시 50분부터 등교를 했다. 첫날부터 세 명이 늦게 왔다(심지어 30분 늦은 친구도 있다). 파레토의 법칙과 같이 학급에는 일정 비율로 지각쟁이가 있다. 랜덤에 가깝게 전 학년에서 골고루 학생이 배정되는데 어째서인지 지각생의 숫자는 반별로 엇비슷하다. 이른바 학교 미스터리다. 혹시 어린이의 세계에는 지각 관청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담당 공무원 별로 할당량이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한 반에만 지각쟁이를 몰아주면 지각 관청의 소행을 의심하는 어른이 나올지도 모르니 인원을 교묘히 조절하고...... 흐음, 초등교사를 오래 하면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답니다.
오늘은 수업이 2교시만 있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자리 및 사물함을 배정했다. 교과서(14종)와 안내장(12종)을 차례대로 배부하고 설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1살은 교과서에 이름을 적는데 적지 않은 공을 들인다. 내일부터 시작될 온라인 수업 소개와 밴드 미가입 학생을 돕다 보니 어느새 하교 시간이 다가왔다. 아이들이 들어 찬 교실은 독특한 시간 가속 기능이 있어서 평소보다 시곗바늘이 1.5배속 빨리 움직인다. 적어도 체감상으로는.
작년에 5학년을 하다가 와서 그런지 한 살 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4학년이 아기 같다. 물론 친해지고 익숙해지면 내면에 숨겨 두었던 발랄한 끼와 에너지를 뿜어내겠지만, 3월까지는 서로를 알아가느라 착한 아기와 침착한 선생님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그나저나 마스크를 벗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니 섬처럼 한 명씩 갈라져서 앉아야 한다. 아무래도 수업의 효과가 떨어진다. 나는 백신 접종 차례가 오면 논란의 아스트라 제네카든 뭐든 기꺼이 맞으려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훨씬 마음을 놓고 내게 다가올 수 있을 테니까. 늦어도 1학기 중이면 좋겠다.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지만.
얘들아, 선생님 백신 맞았어. 안심해. (상상만으로도 꽤 든든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