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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학교의 맛

허리 운동을 합시다, 가방을 매려면

21.04.23

by 이준수

등교 주간 금요일 오후에는 가방을 싸기 위한 사투가 벌어진다. 월요일부터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기에 교과서를 12권씩 싸들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교과서 무게 만으로도 무거운데, 오늘처럼 준비물까지 함께 가져가는 날이면 허리가 휜다. 수민이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찰흙 두 덩어리 가져가라고요?"

"다음 주 미술이 도자기 만들기거든. 미안해."

"선생님 가방 좀 잠가주세요."


, 묵직한 소리를 내며 가방 하나가 교사용 책상에 떨어진다.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입을 쩍 벌린 가방. 과식으로 소화 용량을 초과한 책 괴물을 보는 것 같다. 지퍼를 올려보았으나 꿈쩍도 안 한다. 이대로는 어림도 없다. 일단 내용물을 모두 꺼냈다. 억지로 끼여있던 교과서를 먼저 들어내고, 바닥에 유물처럼 묻힌 물통과 필통을 구출한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구겨진 작은 인형과 파우치를 끝으로 가방이 빈다.


이건 일종의 빈 공간 채우기 게임. 돌, 자갈, 모래로 빈틈없이 어항을 채우는 것과 비슷하다. 우선 교과서를 차곡차곡 넣는다. 교과서는 차지하는 면적이 크고 규격이 일정하여 가장 먼저 들어가는 게 편하다. 어항에 큰 돌을 최우선 순위로 넣는 것과 동일한 원리다. 여러 개로 흩어져 있는 학습지는 한 데 모아 탁탁 친다. 그럼 얇은 책자 두께로 수납이 가능하다. 책과 가방 사이의 헐거운 곳은 물통과 제기, 파우치를 밀어 넣는다. 마지막으로 길쭉하게 생긴 비눗방울 장난감을 검처럼 꽂으면 가방 싸기 끝.


"후하 핫! 으악!"


나는 수민이가 가방을 쉽게 들 수 있도록 뒤에서 받쳐주었다. 그러나 내가 손을 떼자마자 수민이는 균형을 잃고 주저앉았다. 앉은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는 걸 무척 힘들어했다. 저러다 진짜 허리 다치면 어떡하나.


"저는 예전에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미리 교과서를 옮겨 놨더니 편하네요!"


그 와중에도 어떤 녀석은 자기가 잘했다고 자랑을 하며 교실 문을 빠져나갔다. 반면 수민이처럼 가방 지퍼를 못 잠근 아이가 세 명이나 줄을 섰다. 나는 앞의 과정을 반복하여 가방 지퍼를 결국 잠갔다. 지이익 쫙, 지이익 쫙, 지이익 쫙. 비틀비틀 3인방은 하나 같이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사라졌다. 에구구.


이제부터라도 온라인 수업을 대비하여 허리 운동이라도 시켜야 하나. 여름이면 덥다고 물 많이 싸들고 다닐 텐데 어쩌지, 그럼 더 무거워질텐데. 할 수 없지. 지금부터 아침 활동은 허리 돌리기 20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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