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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학교의 맛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아이에게

21.06.25

by 이준수

먹고 사는 건 꽤 중요한 문제다. 우리 반 T는 크리에이터가 꿈인 아이다. 아직 뚜렷한 콘텐츠는 없지만 뭐가 되었던 재미있는 영상을 찍고 싶어 한다. 어떤 주제든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만 있다면 크리에이터는 먹고 살 수 있다. 상상력과 실행력, 지속력만 받쳐 준다면 비디오 크리에이터도 꽤 괜찮은 직업일 것이다. 그러나 나같이 영상물을 끈기 있게 보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절대로 도전할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하다.


설령, 앉은 자리에서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화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자라고 해도 곤란한 점이 있다. 유튜브 시장은 무한 경쟁의 세계다.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야 한다. 공무원처럼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따박따박 꽂히는 규칙적인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T에게 쉽게 조언을 해 줄 수 없었다.


밤에 혼자 유튜브를 돌아다녔다. 딱히 유익한 조언을 해주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 세계를 경험한 소감 정도는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유튜브는 너무 재미있었다. 어어 하는 사이 영상 스무 개를 봤고, 두 시간이 지났다. 나는 어떤 메이커 유튜버가 물수제비 기계를 만들어 실험하는 영상을 멍하게 봤다. 그 사람은 설계도 하고, 조립, 도색, 용접까지 했다. 기계 공장에서 맞춤 의뢰한 부품을 가져오기도 하고. 영화나 게임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을 척척 해낸다. 그러니 구독자가 수십 만 명이고 직업 유튜버로 사는 거겠지만.


달인들의 묘기를 다룬 영상을 보고, 강호동의 운동 능력에 감탄하는 예능 방송을 보았다. 흠, 작고 시시한 가벼운 영상이라면 영상이겠지만 타임 킬링 용으로는 제격이다. 사람들이 석사 논문을 쓰려고 유튜브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적어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나는 어느 순간 덜컥 허무함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브라우저를 꺼버렸다. 헤드폰을 쓰고 모짜르트를 들으며, '자기 앞의 생'을 읽었다. 에밀 아자르는 글을 잘 쓰고,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는 우아하다. 편안하고 기쁘다. 영상이 없는 세계가 주는 담백함이야 말로 나의 참된 쉼이다.


다음 주에 학교가서 T에게 뭐라고 하지. 선생님은 아무리 봐도 유튜브가 어지럽던데, 이 따위 말을 늘어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채널 만들면 구독할게, 광고 중간에 안 넘길게, 이 정도가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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