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지 않으면 '혼나니까' 혹은 '남들도 가니까' 가는 곳일 확률이 높다. 아마 학교를 다닐지 말지 선택하라고 하면 선택률이 25%나 될까. 25%도 꽤 높은 수치일 테지만, 아무튼 학교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필요악', 조금 순화시켜 표현하자면 '마지못해 졸업장 따러가는' 부정적인 공간으로 인식될 것 같다.
그렇지만 걔 중에는 특별히 학교가 싫은 사람이 있다. 그냥 싫은 정도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되고 거부하고 싶은 상태의 사람이 세상에는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 이런저런 간섭받기도 싫고, 배우는 것에도 흥미가 없는, 그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인 사람이 언제나 있다. 의무교육이 법률로 자리 잡은 국가에서 이런 부류의 사람은 고통을 피할 길이 없다. 문제는 그 고통이 본인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퍼진다는 점이다.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람은 교실에서 얌전히 있지 않는다. 수업 중 소리를 지르고, 아무렇게나 돌아다니고, 정당한 지시에 응하지 않는다. 친구를 때리는가 하면, 반복적으로 효과음을 내어 집중을 방해한다. 정말이지 온몸으로 할 수 있는 한 학교의 교육적 행위를 막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선생님도 괴롭다. 어떤 조치와 노력도 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나름 아이에게 애정을 쏟고, 재미있게 수업을 준비해도 아이는 신경 쓰지 않는다.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변화가 없으면 교육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고 자괴감이 든다. 심하면 나의 모든 열정과 노고가 무쓸모처럼 느껴지고, 교사로서 자질이 없다는 우울한 생각이 찾아온다. 어떤 선생님은 단지 이 이유로 교직을 그만두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고, 교사는 교사대로 힘들고, 주변 사람은 주변 사람대로 힘들다. 우리 반에도 한 명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참 곤란한 때가 많다. 오늘은 다른 학교에서 오신 선생님을 모시고 공개 수업을 했는데, 아이가 학습지를 찢었다. 그리고는 마치 나 보라는 듯이 찢어진 종이에 낙서를 했다.
사실 녀석은 아무 생각 없었을 것이다. 그냥 평소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평소보다 더 당황했다. 솔직히 말하면 짜증이 났다. 손님들이 많아서 티는 안 냈지만, 매우 거슬렸다. 나는 왜 그렇게 느꼈을까. 아이들이 하교하고 텅 빈 교실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이들이 내 뜻대로 움직여 주는 행복한 독재를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추론을 했다. 겉으로는 아이들에게 높임말을 쓰고, 다양한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막강한 통제력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흠, 그래도 나는 어른이니까 아이가 학교에 나오고, 수업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녀석 입장에서는 미칠 것 같은 상태로도 꾸역꾸역 내 수업을 들어주고, 학교가 끝날 때까지 앉아 주는 것이다. 일종의 배려고 인내다.
내일 또 녀석 얼굴을 보면 내 감정이 꿈틀거리겠지만, 평온을 되찾은 상태에서 나온 결론은 그렇다. 아, 우리는 서로 힘들다. 나는 그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쳐서 평가라는 결과를 내야 하고, 그 아이는 학교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운명이다. 가르치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과 잘 지내는 기술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 같다. 내가 가르치는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