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스마트폰 갤러리를 보다가 흠칫 놀란 적이 있다. 학기 중에 찍은 사진과 방학 때 찍은 사진 속 내 모습이 확연히 다른 것이다. 학기초나 학기말에 찍힌 내 모습은 눈밑도 어둡고, 어딘가 푸석푸석하다. 반면 방학 중 나의 모습은 생생하다. 피부가 맑고, 표정도 한결 자연스럽다. 체중이 불어나 몸집도 한층 커 보인다. 휴식이 인간에게 주는 이로움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 같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체중이다. 나는 학기 중에 군것질을 훨씬 많이 한다. 절대적 열량이 높다는 의미다. 학교에서 나는 쉬는 시간 틈틈이, 전담 시간에 가끔, 방과 후에 이따금씩 과자나 빵을 먹는다. 수분을 관리하는 마라토너처럼 당을 조절한다.
교실에서 먹는 건 아니고 학년 연구실을 애용한다. 우리 학년은 한 달에 2-3만 원씩 각출하여 각종 음료와 차, 주전부리를 구비한다. 이건 교직의 오랜 전통인데, 2009년 발령 이후 간식 없는 학년 연구실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오늘도 예감 한 봉지와 빈츠 세 봉지를 까먹었다. 학기말이 다가와서, 생활기록부 시즌이 시작되면 몇 배는 더 자주 그리고 많이 먹게 될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로서는 근무 중 잠시 기분을 환기하는 셈 치고 군것질을 한다. 먹는 건 즐겁다. 식사량도 적지 않아서 식판에 받은 음식을 거의 남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몸무게가 늘어야 할 텐데 어쩐 일인지 학기 중에 체중은 요지부동이다. 슬퍼해야할 일은 아니지만.
재작년인가 심심해서 교무수첩에 그날 먹은 간식을 몇 달간 기록한 적이 있다. 엄밀한 기록은 아니고, '샤브레 한 봉지, 버터와플 한 봉지' 정도로 짤막하게 적었다. 대개 우리 반 아이가 친구 코뼈를 부러뜨린 날, 공개 수업 날,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학부모의 억지 민원이 들어온 날 다량의 과자를 섭취했다. 아내는 과자가 몸에 좋지 않으니 줄이라는 말을 하지만, 과자 없이는 이 험한 학교 생활을 헤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한 번 과자에 맛을 들이면 밥 배와 과자 배가 나뉜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일정량의 과자 배를 확보해두지 않으면 허전한 상태가 된다. 아마 방학 때 살이 찌는 건 학기 중 일과에 익숙해져 있던 나의 위장이 영양소를 과잉 흡수하는 것 같다. 친구 배를 발로 차는 아이도 없고, 악성 민원인도 없고, 교장 선생님의 괴롭힘도 없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져서 에너지를 소비할 거리가 사라져 버리는지도 모르겠다. 과도한 신경사용은 다량의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방학 중에는 이 기능이 멈추는 게 아닐까. 그러니 방학 때 체중이 증가하는 건 그리 나쁘게만은 생각할 일이 아니다.
아직 방학하려면 삼 주나 넘게 남았는데, 벌써부터 방학 타령을 하는 것 보니 7월이 오긴 왔나 보다. 선생이 미칠 때쯤 방학하고, 부모가 미칠 때쯤 개학한다는 세간의 속설은 얼마간 진실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어서 빨리 살이나 찌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