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학교의 맛

담임의 봉사활동

21.06.29

by 이준수

학교 뒷동산에 쓰레기를 주으러 간다. 한 학기에 세 시간 있는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건성은 절대로 아니다. 우리 반은 산책을 무진장 좋아한다. 학급 단체 보상으로 산책을 고를 정도다. 영화 보기만큼이나 산책을 좋아하는 반은 드물 것이다.


나는 오십 리터 짜리 봉투를 들고 나섰다. 봉사활동 끝나면 학급에서 마저 채워 쓰려고 했는데, 결국 꽉 차서 수거함에 버려야만 했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 요빈이가 살구를 발견했다. 언덕 위쪽 건물 화단에 심긴 살구나무에서 떨어진 것이다. 좁쌀보다 작은 개미들이 굴을 파듯 살구에 달라붙어 득실댔다. 근홍이는 아까워했다. 정서 말로는 시장에서 살구 한 소쿠리가 팔천 원이라고 한다. 한 알 한 알이 꽤 귀한 과일이다.


삼 주 전에 산책하다가 발견한 산딸기는 모두 사라졌다. 사람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서 그런지 누가 벌써 다 따간 모양이었다. 급식실에서 요리 냄새가 풍겨 시장기가 동한다. 우리는 쓰레기를 줍다 말고 배가 고팠다. 유치원생들은 벌써 식사를 하고 있다. 야외에 나오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위가 꿈틀거린다.


마지막 코스로 2동 건물과 3동 건물 사이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웠다. 막바지라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아이들은 큰 화분에 심긴 식물 구경하기에 바빴다. 강낭콩이 꼬투리를 맺었고, 오이도 제법 크다. 수련꽃이 자홍빛으로 피어서 아이들이 몰렸다. 그러는 사이 김수혁이 딸기 열매를 똑 땄다. 새끼 열매다. 아까부터 배고프다, 배고파를 외치더니 먹거리를 눈앞에 두고 참지 못했다. 내버려 두었으면 튼실한 딸기가 되었을 텐데. 모두 아쉬워했다. 건우는 수혁이에게 면박을 줬다.


교실로 돌아가던 중 현서가 주차장 절벽 비탈에 있는 산딸기 군락을 보았다. 한 줄기에 대 여섯 개씩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시멘트 벽이 높고 언덕이 가팔라 사람 손을 안 탄 것 같았다.


"쌤 저거 따주세요."


하민이의 요청은 곧 합창이 되었다. 나는 시키면 하는 사람. 훌쩍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유유히 산딸기를 땄다. 아주 실하다. 양이 많아서 따는 재미가 있다. 내가 콧노래를 부르자 이번에는 위험하다고 얼른 내려오라고 성화였다.


"쌤 위험해요. 내려와요!"


아까는 따달라더니 막상 내가 올라간 모습을 보고 불안해한다. 원래 아이들은 그렇다. 아이들을 곤란하게 해서는 안 되지, 나는 딸기를 아래쪽으로 건네주고 휙 뛰어내렸다. 따라 하는 녀석이 있을까 봐 괜히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딸기는 아무도 먹지 않았다. 흠, 나는 이것이 아이들에 대한 담임의 작은 봉사활동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죽은 강낭콩 물 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