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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Nov 23. 2021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준다는 기적

2021 종로 전국 행복에세이 공모전 입선

  아침에 눈을 뜨면 신규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날들이 이년 간 이어지고 있다. 마스크 재고 파악도 언젠가부터 기본적인 일처럼 되어버렸다. 이제 어른용과 아동용 마스크 구분은 손으로 대충 만져봐도 알 수 있다. 발생 초기에 나는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을 일시적인 비상사태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실책이었다. 곧 끝날 거라는 생각, 바로 그 생각으로 인해 나는 하루하루 괴로웠다. 


  희망은 좋은 것이지만, 희망이 지나치면 이를 충족시켜주는 현실이 없을 때 기운이 빠진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나의 학교생활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3월이 되었건만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이 웃음소리가 사라진 학교는 쓸쓸하고 적막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마치 동물원에 갔는데 모든 동물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처럼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당연한 조건과 풍경의 부재.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반복적인 일들이다.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밥 먹고 양치를 한다. 자기 전에 발을 닦고, 자고 나면 침구를 개킨다. 우리는 거의 자동화 된 일련의 행동을 하면서 안정감을 느끼고, 삶을 무리 없이 영위할 수 있다. 평소에는 반복적인 일상의 중요성을 알아채기 힘들지만, 일상에 균열이 가고 새로운 상황에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해야 하는 시기가 오면 일상의 귀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강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당장 교과서를 나눠주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온라인 수업이든, 오프라인 수업이든 교과서는 수업에 참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물이다. 예전처럼 풍부한 학습 준비물과 개인별 수준에 맞는 활동지를 적시에 나눠줄 수는 없더라도, 학생이 교과서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등교가 중지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직접 교과서를 챙겨갈 수 없었다. 


  선생님들은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모았다. 기쁜 일이 생기지 않는 울적한 시기에는 서로 가진 능력과 온기를 나누어야 한다. 긴 토의 끝에 우리는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힌트를 얻어 드라이브 쓰루 방식을 도입했다. 교문 근처에 교과서 배부 천막을 차리고 차량에 책을 건네주는 방식이었다. 교실에서 교문까지 책을 옮기는 건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 수대로 교과서 묶음을 제작하고 중간에 풀어지지 않도록 봉지로 감싼다. 3층에서 1층까지 손으로 100개가 넘는 묶음을 일일이 옮긴다. 손수레에 책 묶음을 담아 교문까지 나른다. 집에 차량이 없거나, 책을 들고 갈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 선생님이 집 앞까지 배송한다. 


  몹시 고된 작업이었지만, 학부모와 학생을 직접 만날 드문 기회였다. 이런 식의 첫만남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다.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는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의 짜릿함이 공기를 타고 흐르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의 눈을 마주 보고 인사를 나누는 행위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나는 종교도 없으면서 이 세상 어디엔가 있을 법한 높고 위대한 존재에게 기도했다. 


  ‘다시 예전처럼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그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고된 산행길의 끝에서야 물 한 모금의 소중함을 깨닫듯 나는 아이의 존재를 두 눈에 담고 나서야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확진자 발생 추이에 따라 1/2, 1/3 등 찔끔찔끔 학교에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나머지 기간은 모두 온라인 수업. 감염자가 줄어들지 않는 추세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나 모니터 화면과 마이크로 진행하는 수업은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서로 친해지고 알아갈 시간과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사실 어른도 관계망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붙어 있으라고 하면 견디지 못한다. 하물며 십대 초반의 아이들이다. 서로 이름만 겨우 어찌저찌 외울 뿐 얼굴도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진도를 나가야만 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학교는 진도에 쫓기는 와중에도 각종 평가를 치르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가뭄에 콩 나듯 학교에 나와도 아이들은 시험을 치르기 바빴다. 나는 시험지를 만들고 복사기를 돌려야만 했다. 사실 내가 진짜로 궁금했던 건 아이의 성격은 어떤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부모님과 대화는 자주 하는지였다. 하지만 시험을 치르는 학교의 하루는 정신없이 돌아갔다. 


  학생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며 생활시정표는 앞으로 당겨졌고, 쉬는 시간은 5분으로 팍 줄었다. 2교시와 3교시 사이에 있던 중간 쉬는 시간은 아예 날아가 버렸다. 체육관 활동은 금지되었고, 잡담도 금지, 장난도 금지, 양치도 금지되었다. 점심시간도 15분이나 줄어들어 아이들은 밥을 재빨리 욱여넣었다. 5, 6교시는 블록 수업으로 묶여 별도의 쉬는 시간도 없이 몰아쳤다. 그 결과 본래는 6교시가 끝나고 2시 40분에 하교할 아이들이 2시면 집에 갔다. 그야말로 출석 일수를 채우고, 성적란에 결과를 적기 위해 극단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행정기관이나 다름없었다. 


  학교는 단지 교과서 내용을 머리에 주워 담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이 사회화를 경험하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지식과 마음, 체력을 기르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어깨동무하며 나란히 걷는 등굣길, 금을 밟지 않으려 발끝을 세우는 방과 후의 운동장 놀이는 진단평가만큼이나 의미 있다. 교사인 나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인데 지난 1년 반 동안 아이들이 학교에 자주 나오지 못해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퍽 행복하다. 확진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없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명률이 낮아졌다. 위드 코로나라는 말도 솔솔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2학기부터 아이들이 계속 학교에 나온다. 마스크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 이전 시대로 돌아간 것만 같다. 나는 전국의 다른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방학 기간에 두 차례 백신을 접종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최소한의 티켓을 확보한 셈이다. 


  1년 반 만에 학교는 이제야 학교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점심시간은 여전히 40분으로 짧지만, 쉬는 시간이 10분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이들은 지난 세월 억압해 두었던 수다를 발산하듯 엄청난 데시벨을 자랑한다. 나는 귀가 아프고, 목이 아프다. 퇴근 무렵이면 진이 쪽 빠지지만 교사로서는 행복하다. 이 귀여운 녀석들이 학교에서 사라졌을 때 내가 얼마나 불행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는 기적을 오래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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